마티아스 뇔케 작가의 글을 읽고
네 잎클로버는 쉽게 우리에게 자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거의 만 분의 일의 확률로 나타난다고 한다. 출근길에 여유가 있으면 네 잎클로버를 찾아본다. 이번에는 네 잎이 아니라 여섯 잎이 붙어있는 클로버였다. 행운이 2개 더 추가되는 느낌이다. 고개를 숙여서 찾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 하는지 쳐다보기도 한다. 인생에서 행운이 있다고 믿는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을 한 번쯤은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부쩍 많이 든다. 그동안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준 책이다. 인생을 살면서 고민하지 않았고 질문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행운아였는지 별다른 고통은 없었다. 젊었을 때는 남에게 지기 싫어했었고 셈도 많았다. 혈기 왕성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하루를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지 않았다. 남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까 신경도 많이 썼다. 그러나 지나고 보면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생각한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는 보여주기 위한 모든 것들과 결별하기, 두 번째는 기분은 선택할 수 있어도 태도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드러내지 않아도 빛나는 현명한 삶의 방식이다. 제목만 봐도 흐뭇하다. 이런 책들은 많이 읽었다. 그 나물에 그 밥 같지만 계속해서 읽는 것은 읽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해서 살기보다는 나를 위해서 살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누가 나를 위해서 조언이나 충고를 하는 것도 이제는 화내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예전에는 화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화를 내지 않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짜증은 낸다. 짜증도 이제는 내지 말아야겠다. 걸음걸이부터 자세부터 너무 지적이 많았다. 왜 남이 나의 걷는 속도와 자세를 지적하는지 기분이 꽤 나빴다. 당연히 쓸데없는 관심이었고 오지랖이라는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한다. 가족처럼 아껴서 나한테 지적했을 리는 없다. 그렇게 남한테 함부로 떠벌리는 사람과는 상종을 안 해도 좋다. 정말 너나 잘해가 맞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 책에서 ‘인생은 승패를 나누는 경쟁이 아니다. 그건 성공을 팔아 돈을 버는 사람들이나 들먹이는 불손한 말이다. 자기 생각이 분명하고, 내면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함을 금박으로 치장하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남이 생각하는 것이 맞을 때도 있고 내 생각이 맞을 때도 있다. 논쟁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남의 행동이나 모습을 지적하는 행위는 추천하지 않는다. 이 삼십 대에는 나도 겸손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었다. “왜 이렇게 당당하고 고개가 뻣뻣하냐?”라는 황당한 말이었다. 정말 내가 꼴 보기 싫은 모양이다. 나는 뭐든지 잘한다고 허풍을 떨고 다녔던 것은 인정한다. 왜 그랬는지 생각해 보니까 잘 보이려고 했던 것 같다. 남을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나보다 못난 사람은 없다고 지금은 생각하지만, 옛날에는 나보다 다 못한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떠벌리고 다니지 않아도 잘난 사람은 저절로 두각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몰랐다. 조용히 이기는 겸손한 능력자들이 봤을 때는 정말로 한심하게 보였을 것이다. 책에서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높여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마음에는 이런 바람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깊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 남에게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 타인보다 월등하게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땅에 발을 딛고서 남들과 더불어 잘 살고 싶다는 바람에 말이다. 바로 이런 바람을 가진 사람들의 태도와 관점에 관한 이야기가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이다.’ 사실상 이 책의 주제이자 정곡이다. 남을 이기려고 했고 그래야 성공이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이야 이겨도 그만이고 성공 안 해도 그만이다. 그저 하루가 즐겁고 감사할 따름이다. 아침에 쏟아지는 햇살이 감사하고 모든 것이 감사하다.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유지되었으면 너무나 좋겠다. 겸손한 자세로 이 세상을 살면 좋겠다. 책에서 ‘그리스 희극에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동일한 캐릭터가 항상 등장했다. 전형적인 인물 유형인 ‘에이런(Eiron)’과 ‘알라존(Alazon)’이다. 에이런은 자신의 진짜 능력은 숨김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인물이다. 반대로 알라존은 실제로는 가진 게 거의 없지만 허세를 부리는 떠버리 캐릭터다.‘ 나는 젊은 시절에는 알라존이었고 지금은 에이런이 되고자 한다. 능력은 사실 없다. 그러나 감춰진 나도 알지 못하는 저력과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능력이 있다. 나와 남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 발전하는 나를 내가 바라보면 된다. 인간의 능력은 위대하고 끝이 없다. 수많은 알라존들이 존재한다.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 아키비아데스는 말했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 이성이 담겨 있음을, 전적으로 신성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를 비웃는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적인 아이러니”라고 부른다. 겉으로 드러난 것과 숨겨진 실제 사이의 괴리를 뜻하는 ‘아이러니(Irony)’는 바로 ‘에이런(Erion)’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렇듯 자신을 낮추는 방식과 아이러니는 묘하게 연결돼 있다.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척 자기 스스로를 더 낮게 표현하는 방식은, 그 깊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알아채지 못하니 말이다.‘ 아직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단어와 철학이 나를 작게 만든다. 아직도 읽어야 할 책들이 한 수레가 남아있다. 나의 목표는 천 권이 목표다. 양적으로 일단은 읽기로 했다. 고전을 읽거나 목적을 가지고 읽는 것도 좋지만, 채우는 것이 목표다. 참으로 무식한 접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나는 읽을 것이다. 책은 나의 친구가 되었다. 이 책은 겸손이 키워드다. 아주 멋진 책을 만났다. 책에서 ’ 젠틀맨은 항상 세련되게 거리를 둔다. 그들의 겸손한 태도는 결코 공간을 독차지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품위를 인정해 줌으로써 자신의 품위를 지키는 사람, 그게 바로 젠틀맨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고통을 수반한다. 누군가의 배려와 희생이 있어야 유지된다는 것이다. 서로 배려하고 희생하지 않으면 관계가 어긋나게 되어있다. 항상 젠틀맨의 자세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쉽지 않은 자세이지만 조금씩 노력할 작정이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젠틀맨 코스프레가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오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책에서 ’ 앞으로 나서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태도가 가져다주는 의외의 기쁨은 또 있다. 나를 다 소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어떤 상황이 올지 모르는 상황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해 둘 수 있다는 것, 과대 포장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현실 가능한 목표 안에서 계획한 대로 하나씩 이뤄 나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런 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 등이다.‘ 사람들은 잘난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나보다 조금은 못나고 편안한 사람을 좋아한다. 어딘가 빈틈이 있고 허술한 사람이 끌린다. 일부러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타고난 성격이나 기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도 많다. 나도 마찬가지로 살 와왔지만, 그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가서 산다면 이 책대로 살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삶의 방식이나 환경은 모든 사람이 같지 않다. 사람은 안 변한다고 하지만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쪽으로 겸손한 쪽으로 변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책이 필요하고 경험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수도 없이 많이 나오는 단어는 바로 겸손이다. 책에서 ’ 겸손함이란, 나 자신을 의심할 수도 있는 용기이기도 하다. 나의 견해를 뒤집지 못하는 진실이라고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충고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하지 않고 경청할 수 있는 태도다.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 온화하고 현명한 삶의 태도, 이것이 바로 겸손의 힘이다. 겸손한 사람은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분야에서조차 자신이 어떤 기여를 했는지 남들이 거의 모르게 한다. 대단히 긍정적인 작용을 하면서도 말이다. 이는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거나 실수를 회피하기 위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단지 명성과 감탄을 거부하는 자세다. 겸손한 사람은 자의식을 가지고 긴장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눈에 띄지 않고 소박하지만,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기준과 요구에 자신의 행복을 걸지 않으며, 무엇을 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한다.’ 참 저 사람 겸손하고 기본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누군가는 나를 욕했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만하고 뭐든지 반대고 말을 안 듣다고 했을 것이다. 쉽게 이미지가 사라지지 않는다. 초반의 이미지가 그래서 중요하다. 이미 버린 이미지를 바로 세우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다정하지 않았던 사람이 다정하게 화도 안 내고 지내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거나 이상하게 볼 것이다. 그러나 생각이 변했다면 행동이 변하게 되어있다. 쉽게 장착할 수 있는 겸손이라면 누구나 겸손할 것이다. 겸손은 저절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많이 아는 사람이 겸손할 수 있다.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만의 철학과 루틴이 있어야 한다. 흔히 말하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인생은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 분명히 나와 맞지 않고 싫은 사람이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살아가면 된다. 모두를 포용할 수는 없다. 친구들도 편한 친구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다. 어릴 적 친구들은 그래서 좋다.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언제 봐도 친구다. 친구도 좋고 직장동료도 좋고 지인들도 좋다. 그냥 사람을 좋아한다. 가끔 믿었던 사람들한테 상처받기도 한다. 그래서 정말 친했던 사람하고 한번 어긋나면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 그런 경우는 당해보면 안다.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의 삶이 어찌 보면 정답이다. 사람은 소속감을 바라기도 하고 혼자 있고 싶기도 하다. 인간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고 간사하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애쓰지 말아야 한다. 많은 기대를 하면 실망이 크다. 기대하지 않으면 된다.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를 제목처럼 갖고 살아야 한다. 세상은 각박해졌다. 측은지심과 이심전심의 마음으로 살아가고는 있지만 문득 힘들 때가 찾아온다. 잘 참아왔고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모두의 인생과 삶을 응원한다. 어차피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고 통제할 수 있지 않은 것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루를 감사하게 살뿐이다. 아직도 정확하게 이것이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늘 고민해야 한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 요즘에 노력한다. 도움을 주는 삶, 웃게 만드는 삶, 감사하는 삶, 가르치는 삶, 봉사하는 삶, 청소하는 삶, 즐기는 삶, 건강을 위한 삶, 끌려다니지 않는 삶, 공부하는 삶 등 여러 가지 생각해 보고 있다. 과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 기대도 된다.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즐겁다. 꾸준히 생각해 보려 한다. 나는 이렇게 너를 위해서 사는데 너는 왜 나한테 이렇게 노력하지 않는다는 불만을 품지 말자. 조금은 손해 보고 살아도 괜찮다. 그래도 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겸손한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전쟁이 없고 평화를 바란다. 어디선가는 하루하루가 고통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힘들고 어려울 때 도움을 주어야 한다. 마음을 가졌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봉사하는 삶으로 마음이 많이 기운다. 책의 끝에는 현명하게 겸손해지는 삶의 10가지 원칙이 소개되어 있다. 원칙을 따라서 노력하다 보면 겸손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아무도 영원히 살 수 없다. 사는 동안 욕심부리지 말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살자고 마음먹고 살지만, 사람의 욕심은 불쑥불쑥 어디선가 튀어나온다. 남과의 비교를 안 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나만의 속도로 나의 길을 가다가도 이 길이 맞는가. 속도가 괜찮은가 되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힘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비마다 잘 넘어왔다. 또 고비가 올 것이다. 걱정 말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겸손하게 살아가면 답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