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최진영 작가의 글을 읽고

by 나비고

사랑이라는 것. 힘든 것. 신경이 쓰이는 것. 머리 아픈 것. 처음과 끝이 있는 것.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것. 다양하다. 사랑하고 있나요?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랑 이야기. 수학책인 줄 알았던 책. 구와 담의 사랑이 진하다. 구는 죽었다. 담은 구를 먹어 치웠다. 정말로 구의 시체를 조금씩 담은 먹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어.” 섬뜩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먹는다. 실제로 먹은 건지 상상인지 헷갈린다. 먹은 쪽으로 기운다.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그런 것일까. 어릴 적부터 구와 담은 붙어 다녔다. 한 몸처럼 다녔다. 조그만 것들이 벌써 까져서 사랑을 했다. 둘의 사랑은 그렇게 익어갔다. 그냥 손잡고 다니고 같이 분식 먹고 집에서 놀고 그런다. 담이는 이모랑 산다. 구는 아버지 하고 어머니가 있다. 같은 반 친구였다. 부자는 아니다. 구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처음에는 혼란스러웠다. 둘이 동성인 줄 알았다. 구가 남자이고 담이 여자다.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맨날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좋아했다. 누가 뭐라고 욕하든 말든 둘은 사랑이 전부였다. 세세한 이야기는 책 속에 담겨있다. 사랑 이야기는 읽는 이도 사랑을 하는 것처럼 설렌다. 사랑하면 좋다.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다.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면 눈이 먼다. 귀도 먼다. 사랑하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좋다. 육체의 결합으로 사랑이 더욱 끈끈해진다. 나이가 들어도 사랑은 하고 싶다. 그러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는 담을 위해 살았다. 담도 마찬가지로 살았다. 누구의 사랑이 더 큰지 안 큰지는 비교할 필요가 없다. 선물을 주지 않아도 좋다. 하루하루가 연인들에게는 축복 같은 시간이다. 정말 아련한 세월이 흘렀다. 소설 속 사랑 이야기만큼 나도 사랑했던 시절이 있었다. 구는 공장에서 일했다. 노마라는 아이가 있었다. 노마는 차에 치여 죽었다. 공장에서 누님을 알게 된다. 누님과 동거한다. 그것을 담은 목격을 한다. 누님과 헤어진다. 구는 군대에 간다. 담은 정육점에서 일한다. 구는 부모님의 빚 때문에 도망친다. 길거리에서 맞아서 죽는다. 담은 시체를 먹는다. 대충 이런 줄거리이다. 어릴 적부터 만나서 죽을 때까지 사랑한 내용이다. 구의 증명이라는 제목을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구는 죽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담이 시체를 먹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죽어서 영혼으로 담을 보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과 영혼이다. 이름이 왜 외자일까. 궁금하다. 작가 마음이다. 담의 이모도 죽는다. 담은 이모의 장례식을 치른다. 혼자가 되었다. 그 당시 구는 군대에 있었다. 잠깐 중학교 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다. “구와 멀어진 후에도 늘 구를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하던 지난날을 생각하고, 구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상하고, 구도 나를 이렇게 생각할까, 궁금해하고, 생각은 돌고 돌아 구를 미워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사랑하면 느껴봤을 감정이다. 맨날 사랑하는 사람 생각밖에 안 들고 정말 좋아하는데 밉기도 하다. 읽다 보면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그땐 그랬지, 추억이 밀려온다. “담이는 내 생각을 하지 않는가 보다. 내 생각을 하지 않고 자나 보다. 잠이 잘 오는가 보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서로서로 조금의 양보도 없이 사랑한다. 초등학교 때야 그냥 좋아서 매일 붙어있었고, 이성으로서 사랑을 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남자나 여자나 성인이나 마찬가지다. 서로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강력해진다. 서로서로 원하고 만지고 싶어진다. “가끔 담이 팔뚝과 내 팔뚝이 스쳤다. 그럴 때면 여름인데도 소름이 돋았다. 담이 습관처럼 제 단발머리를 손가락으로 빗다가 정수리 아래로 묶어 올릴 때면 시큼한 땀 냄새와 아련한 샴푸 향이 동시에 풍겼다. 귓바퀴 뒤에서 흘러내린 땀이 쇄골까지 동시에 풍겼다.” 아슬아슬한 육체의 결합이 이루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한번 붙으면 겉잡을 수없이 타들어 갈 것이다. 매일 해도 좋은 육체의 사랑이 찬란하다. 살짝만 닿아도 사랑하면 모든 세포가 일어난다. 목소리와 숨결만 들어도 사랑이 샘솟는다. 사랑의 감각은 황홀하다. 골목에서 키스하다가 둘은 입술이 물어뜯겨도 모를 만큼 키스한다. 구는 입술이 아픈 것이 아니라 발기해서 아픈 것이었다. 그것을 담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서로에게 서로뿐임을 잘 알면서도, 느긋하게 섹스해도 될 만큼 넉넉한 시공간 속에서도, 우린 자주 조급해했다. 곧 방해받고 갈라질 듯 급박해했다. 간신히 바지만 내린 채 다리를 벌렸고 바로 삽입했다.” 키스와 섹스가 이뤄지면서 사랑은 계속해서 발전한다. 구가 진짜로 죽어서 담이 자기를 먹는 것을 보고 말한다. “담이 울면서 나를 먹는다. 저것이 눈물인지 핏물인지 진물인지 모르겠다. 저걸 다만 운다고 말할 수 있나. 자기가 지금 울고 있다는 것을 담은 알까.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까. 죽으면 다 끝인 줄 알았는데, 몸은 저기 저렇게 남아 있고 마음은 여태 내게 달라붙어 있다. 저 무거운 몸을 내가 가져가고 이 마음을 담에게 남길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마음도 네가 먹어주면 좋을 텐데. 나도 안다. 맑고도 우스웠던 우리의 첫 키스와 그 겨울밤을 떠올리던 또 다른 밤도 나는 다 안다. 너와 다른 우주에서 온전히 기억하고 있어. 여기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억뿐이니까. 기억이 나의 미래. 기억은 너. 너는 나의 미래.” 구구절절한 사랑 이야기. 담의 증명은 나오지 않았나?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이었다. 골목은 꽤 오르막이었다. 너무 추워서 죽을 것 같았다. 연탄재는 골목 어귀마다 쌓여 있었다. 그날따라 왜 이렇게 춥게 입었는지 모르겠다. 꼴딱 겨울밤을 트럭 뒤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아침이 밝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내 마음을 전하고자 애썼다. 대학로의 서울대학병원 앞 인도에서였다. 너는 울었고 나도 울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가지 말라고 애원했다. 펑펑 울었다. 나를 더 껴안았다. 안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헤어졌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다시 만났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예전처럼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영영 헤어졌다. 수십 년이 흘러서 다시 연락했다. 이제는 연락도 하지 말라고 했다. 아직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이 든다. 아니어도 좋다. 기억의 저편에는 아직도 그때의 시간과 장소가 새겨져 있다.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 나이가 들었다. 간직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가끔 생각이 나는 것이지 계속해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증명하라면 증명할 수 있다. 강릉의 겨울도 좋았다. 없어진 모텔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도 그 집을 알 것 같지만 변해버렸을 것이다. 허리는 잘록했고, 가슴은 풍만했다. 입술은 부드러웠고 촉촉했다.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나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헤어진 후 거의 1년 동안은 술만 먹으면 울었다. 구의 증명과 비슷한 강도의 사랑이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를 끝없이 기다린다는 뜻일까. 구가 죽어버린 지금도 나는 구를 기다리고 있다. 구도 나와 같을까.” 징글징글한 사랑이다. 사랑은 징글맞게 이어진다. 끊어지지 않는다. 불씨는 아직 살아있다. 누구나 사랑의 불씨에 바람만 불어주면 타오른다. “행복해지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사랑은 앞뒤를 안 가린다. 그냥 다 좋은 것이 사랑이다. 짝사랑은 그러고 보면 잔인하다. 사랑은 같이 하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 어디서 갑자기 들어온다.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꾼다. 사랑은 끝없는 기다림이다. “네가 지금 죽더라도 우리 영혼이 다시 만나게 되리라 는 보장은 없다. 나는 아직 노마도 이모도 만나지 못했으니까. 우리가 몸을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나 만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태어났고 죽었지만 아직은, 다시 태어나지 못했으니, 다시 태어나 다른 존재로 만난 너를 내가 사랑하게 될까. 다른 존재인 나를 네가 사랑해 줄까. 그 역시 알 수 없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너 아닌 그 어떤 너도 상상할 수 없고, 사랑할 자신도 없다. 이승에서 너를 사랑했던 기억, 그 기억을 읽고 싶지 않다. 그러니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나를 기억하며 오래도록 살아주기를. 그렇게 오래오래 너를 지켜볼 수 있기를 살고 살다 늙어버린 몸을 더는 견디지 못해 결국 너마저 죽는 날, 그렇게 되는 날, 그제야 우리 같이 기대해 보자. 너와 내가 혼으로든 다른 몸으로든 다시 만나길. 네가 바라고 내가 바라듯, 네가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후에, 그때에야 우리같이.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 년토록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 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감동적이고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대목을 읽고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죽어서도 사랑은 이루고픈 구의 사랑 증명은 아주아주 확실하다. 얼마나 사랑해야 이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는 한 달 내내 구와 담이 이야기만 썼다고 한다. 일인용 의자에 앉아서 글을 쓰다가 지치거나 불행해지면 벗어 놓은 옷처럼 축 늘어져서 '9와 숫자들‘의 <창세기>란 곡들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로 들어봤다. 역시나 사랑 노래였다. 작가는 지난날 애인과 같이 있을 때 살을 뜯어먹는 상상 하며 혼자 좋아하곤 했다고 한다. 사랑하면 주머니 속에 넣고 싶고 깨물어버리고 싶다는 공통의 감정이다. 역시나 사랑은 인간에게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좋은 것이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은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는 없어지지 않는 가장 위대한 감정이다. 책은 온통 빨간색이다. 정열적인 색이다. 빨간색은 그렇다. 피처럼 숭고하다. 사랑은 파란색이 아니다. 빨간색이다. 파란색은 차가운 느낌이다. 빨간색은 따뜻한 느낌이다. 장미와 같은 빨간색이다. 사랑하고 싶어진다. 결혼 청첩장은 한주에 한 번꼴로 도착한다. 요즘은 별도의 청첩장으로 받지 않는다. 카톡이나 메일로 받는다. 펴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지금은 클릭하는 재미가 있다. 사진이 실려서 신랑·신부의 스튜디오사진을 볼 수 있어서 좋다. 결혼식 하는 것을 가끔 유튜브로 볼 때가 있다. 싱그럽고 행복해 보인다. 가장 짧지만 행복한 시간이다. 많은 축하를 받는다. 그때만큼은 가장 아름답고 행복하다. 앞으로 펼쳐질 현실을 모른 채 말이다. 현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연애할 때가 좋다. 결혼하면은 그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랑 말고 다른 것들을 많이 생각하면서 생각하게 한다. 육아부터 경제까지 생각해야 된다. 초치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사랑만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사랑하면 얼굴이 예뻐진다. 보면 알 수 있다. 좋으니까, 얼굴이 밝아지고 예뻐지는 것이다. 정열적인 사랑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지지만, 정은 두터워진다. 정이 곧 사랑이지 뭐가 사랑인가. 정들면 사랑하는 것이다. 정이 먼저냐 사랑이 먼저냐 따질 필요가 없다. 모든 것들을 사랑해도 괜찮다. 소설 속의 사랑 이야기는 사실처럼 느껴진다. 허구라고 해도 그렇다. 소설 같은 사랑이 현실에서 똑같이 발생한다. 정말로 그렇다. 책이 현실이고 현실이 책이다.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사랑이 생기면 온 힘을 다한다. 바라지 않아도 사랑은 그렇게 힘이 강하다. 사랑을 욕할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것을 못 하게 막을 수는 없다. 불륜만 아니면 된다. 학원 친구도 사랑했었다. 성당의 후배도 사랑했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을 사랑했다. 무수히는 아니다. 손가락으로 꼽는다. 살아가면서 더 이상 하지 못할 사랑이다. 학창 시절에 사랑이 순수하고 좋다. 커가면서 하는 사랑도 좋다. 결혼 전까지의 사랑만 좋다. 결혼 후에는 사랑하면 안 된다. 감추고 살아야 한다. 그냥 짝사랑만 해야 한다. 사랑이 그리우면 사람 말고 자연이나 다른 물건을 사랑하면 된다. 사랑의 종류는 여러 가지다. 글쓰기를 좋아하면 그것도 사랑이다. 요즘은 달리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돈을 사랑해도 된다. 다 사랑해도 된다. 정하면 된다. 일부러 정하지 않아도 된다. 살아가면서 마음에 들면 사랑하면 된다. 증명해 보이면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자. 나를 사랑해도 좋다. 무엇이든 괜찮다. 사랑한다고 말해보자. 하늘과 별과 바람을 사랑해도 좋다. 사랑하면 좋다. 좋은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이 사랑이다. 사랑에 푹 빠져있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사랑하면서 살면 좋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