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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인증

생활 에세이

by 나비고

가죽이 바랬다. 이거 무슨 가죽이지, 이탈리아 가죽이라 한 땀 한 땀이 소중한 내 가방. 내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남들은 참 궁금하다고 한다. 뭐 별거가 있나 지갑, 충전기, 핫팩 등등 너무 많아서 찾으려면 한참을 서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이 가죽이 천연가죽인가? 인조가죽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아니야 감각적으로 천연가죽 맞아. 죽어간 수많은 말, 소, 송아지, 돼지, 양 등 가죽 있는 모든 동물. 사람 가죽은 상상하기 싫다. 약품에 절여지고 말리기를 반복해서 단단한 가방으로 가죽잠바로 탄생한다. 무두질하지 않으면 그런 질감이 나오지 않는다. 불쌍하지만 난 카니보어다. 서울역 위로 올라가면 구둣가게가 있었다. 친구의 아버지가 구둣방을 운영했다. 친구 따라서 구두 재료인지 구두인지를 사러 갔었다. 광을 내는 구두닦이가 많았는데 지금은 어디서 빛을 내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인조가죽이라 손바닥이 아픈 야구글러브. 어릴 적 나는 프로야구 어린이 회원이었다. 아버지는 글러브와 배트를 사주셨다. 가죽이 아닌 인조가죽 글러브, 방망이는 알루미늄 말고 나무. 한국시리즈가 끝나갈 무렵에는 어김없이 내복을 꺼내 입는다. 유니크하고 따뜻해지는 내복. 시범경기가 시작되면 다시 옷장 서랍으로 들어간다. 빨래 좀 게고 커피 좀 마셔야겠다. 선글라스를 끼고 여신이 그려진 드라이브스루나 갈까. 그냥 집에서 신문이나 보면서 노를 저어 먹어야겠다. 노안이 와서 안경은 들고 보는 게 더 잘 보인다. 구멍 난 합성수지 슬리퍼를 신고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 담배는 30 갑년을 피웠다. 폐가 아프다. 법공부를 하려니 머리까지 아프다. 정말 너하고 이별하고 싶다.


너의 변신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워

너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내가 너무 힘들어져

너를 처음 봤을 때 넌 나를 거부했지...

그러나 내가 누구야

널 내 것으로 만든다고 했잖아.

너의 빨간 입술은 날 유혹하기에 충분했어

너를 처음 안았을 때 난 너무 어지러워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지...

그 후로 우린 꼭 붙어 다녔잖아.

넌 다른 사람들한테도 인기가 좋았어

친구뿐 아니라 널 모두가 좋아했지...

나도 그런 네가 자랑스러워

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좋았으니까,

그리고 넌 액세서리를 무진장 좋아했잖아.

또 술이랑 커피도 좋아했고 항상 식사 후에는 한 번도 빠짐없이 빨간 립스틱을 고쳐 발랐잖아.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또 있다. 손 그냥 잡는 거 싫어해서

항상 깍지 끼고 손잡았잖아.

학교 다닐 때 몰래 너 만나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혼난 거 기억하니? 그때는 몰래 널 만나는 게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수술하고 나서 만났을 때는 힘들다고

많이 얘기 못했잖아.

무리하면 수술 부위가 터진다고 조심조심했던 거 알지

우리가 좋아했던 만큼 힘든 적도 많았어.

처음 너하고 헤어진 후 3시간도 안 돼서 전화해서

널 만났잖아.

그때 너무나 세게 안아서 립스틱이 얼굴에 묻어서 지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 맞다. 넌 물을 정말 싫어했잖아.

수영장 가는 거 목욕하는 거 비 오는 거 다 싫어했잖아.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숫자는 20이었다.

또 좋아하는 보석은 수정, 좋아하는 나무는 소나무,

좋아하는 꽃은 라일락 하고 장미, 좋아하는 사탕은 박하사탕, 그리고

한라산이 제일 좋다고 했지!

그리고 너 취미가 골동품 수집이었잖아.

너하고 인사동에 갔을 때 고려청자, 백자 구경만 하고

돈 없어서 못 사고 그냥 온 거 알지...

너 만나서 쓴 돈을 계산해 보니까

3,500만 원 정도 되드라

지금까지 한 번도 나 대신 계산한 적 없는 거 알지...

내가 너 좋아했으니까, 하나도 안 아까워

이제 정말 힘들고 지쳐서 너랑 헤어져야겠다.

이번에는 진짜야 우리가 만난 지 30년이 훨씬 넘었지만

그 세월만큼 많이 고통스러울 거야 내가 널 얼마나 좋아했는지 생각 많이 날 거야 항상 너 지켜볼게.

너 보고 싶어도 참을 거야 그리고 이겨낼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 만날 거야 너도 다른 사람 만나

알았지! 그리고 네가 나한테 선물한 거 버리던가 필요한 사람 줘도 되지...

이제 난 필요 없으니까, 너의 모든 흔적까지

이젠 지울 거야 우리 다시 태어나도 만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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