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에세이
퇴근은 언제나 즐겁다. 출근은 언제나 괴롭다.
그래서 직장인은 아침 표정보다 저녁 표정이 좋다.
집에 들어오니 벌써 11시가 다 되었다.
그녀가 만들어놓은 감자를 캐고 모래를 갈아주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그녀의 턱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집사의 삶은 털과 함께이다. 침대에도 리클라이너에도 베개에도 책에도 음식에도...
정말 털만 빠지지 않는다면 완벽하다.
배변을 알아서 가리는 동물이 어디 흔하랴!
산책도 필요 없고 목욕도 사실은 필요 없다.
무한한 호기심과 민첩함과 점프력과 깔끔함, 유연성 등등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최고의 작품이다.
앞으로 15년 정도는 네가 주인이고 내가 집사다.
내일은 고장 난 무선 진공청소기 수리를 맡겨야겠다.
2년 이상을 고장 없이 사용했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부터 털까지 가세하니 청소기가 부하가 걸린 것 같다.
먼지를 빨아들이는 롤러 부분이 자동으로 회전하지 않는다.
드르륵 소리만 나지 돌지를 않는다.
당신의 충고를 듣기로 했다.
손님 및 나의 건강과 청결을 위해서 청소를 자주 해야겠다.
성격인지 모르겠지만, 너무 깨끗하거나 새것은 조금 부담스럽다.
어린 시절 새 운동화를 아빠가 사주셨다. 부끄러운 마음에 운동화에 일부러 흙을 묻히고 등교를 했었다.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신고식처럼 새 운동화 밟기가 일쑤였고 신발을 몰래 숨겨놓는 장난도 많이 했다.
그래서 그것을 피하고자 오래된 신발인 것처럼 하고 다녔다.
왜 그랬을까...
돋보이거나 관심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이목이 집중되면 하얀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별명이 딸기였다.
지금은 새 옷이나 새 신발에 미리 오염을 시키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