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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Jul 26. 2023

긴 하루

진짜 길다

드디어 실습이 끝났다. 별로 많은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몹시 힘이 들었다. 마지막 이틀 중 첫날은 아이들이 방학이라 바빴다. 마지막날은 구청 소속 모든 지역아동센터의 운동회가 열렸다. 안 그러려고 했는데 팔짝팔짝 뛰고 공 쫓아다니고 하다 보니 실습이 끝났다. 센터장님은 실습생이 아닌 직원처럼 일했다며 고마워하셨다.




남편에게서 '모임이 있으니 저녁은 혼자 먹으라'는 문자가 왔다. 다행이다. 내 한 몸 추스르기도 벅차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제 먹었던 것 대충 먹고 맥주 한 캔 마시고 누웠다. 사회복지 실습이 끝났다는 것이 뭔가 감개가 무량하면서 서운하기도 하고 그랬다. 20일을 다녔는데 나는 이러저러한 일로 두 달을 다니다 보니 다른 실습생보다 정이 두 배 들었나 보다. 아이들 얼굴 하나씩 떠올라다 깜빡 잠이 들었나...


어허! 남편이 들어왔으면 벌떡 일어나서, "서방님~ 오셨어요?" 해야지 말이야, 본체만체하고 말이야, 어?


남편이 거나하게 취해서는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웃음기 가득한 큰소리를 내고 있었다. 잠에 취한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오늘도 취했구나, 그러다 자겠지 했다. 조용한 나에게 서운했는지 슬금슬금 다가오는게 느껴지더니 남편이 갑자기 내 입을 꼼지락거리며 만진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진짜!


숙면을 위해 입에 종이테잎을 붙이고 자고 있는 나.

그 테잎을 떼려고 애쓰던 남편이, 드디어 일어난 나에게 누가바를 들이밀며 먹으란다. 


안 먹어! 당신 혼자 먹으라고. 나 안 먹어!


빈쯤 떨어진 테잎을 다시 입에 붙이며 소리를 버럭 지르자 누가바의 초콜릿을 와자작 깨물며 남편이 기껏 한다는 소리가


칫, 아이스크림 같이 먹자는데 화만 내고... 딸한테 전화나 해야겠다. 이힛


한다. 제발 이 냥반아 술 먹고 애한테 전화하지 말라고, 진짜 왜 이러지?

남편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고 왔다리갔다니 하다가 내 발을 밟고 침대에 올라 드디어 잠이 들었다.


하루가 - 너----무 -- 길다. 이 결혼생활은 정해진 기한이 없는 건가. 서로 애틋하게 끝내려면 몇 년 정도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내일 아침에  시원한 김칫국을 끓여야겠다고 생각하는 나를 보며 피식 웃고 만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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