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상희 Aug 21. 2023

여름, 가고 있다

3주간의 휴가

독일에서 사는 동생네 가족이 우리 집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지난 토요일에 돌아갔다. 취업이민 24개월 만이라 그냥 한국 사람들이 한국에 놀러 온 거라는 게 맞는 표현 같다. 그래서 더 그리웠을 한국. 3주라는 시간이 길거라고 생각했지만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10살과 14살의 조카에게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문방구 탐방’과 ‘가만히 누워있기’라고 말했다. 우리는 같이 먹고 싶은 것 해 먹고 구경하고 싶은 것 구경하고 자매가 싸우는 것을 바라보며 휴가를 보냈다.  


    




독일의 의료수준도 몹시 높다지만 동생네 가족은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병원 투어를 했다. 통상적으로 3, 4일이 걸린다는 건강보험 되살리기는 하루가 안 되어서 처리가 되었고 유럽의 슬로우 시스템에 열불나 하는 대한민국 출신 부부를 기쁘게 했다. 피부과에 가서 작은 아이 이마에 무언가 동글동글하게 만져지는 그것을 빼내는 시술을 하였고, 엉덩이 쪽에 무언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던 큰아이는 그것을 빼내는 수술을 했다. 작은 아이는 서럽게 운 것이 무색하게 아무런 흔적도 없고, 큰아이는 세바늘의 꿰맨 자국을 남겼다.  더불어 온 식구가 치과와 미용실을 다녀와서 보이는 곳과 안 보이는 곳이 점점 예뻐졌다.      




독일로 돌아가는 짐을 싸다 가방이 부족해서 이민가방을 사러 나갔다가 지하상가를 동생과 함께 걷는데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동생이 초등학생, 내가 중학생 때쯤이었는데 눈병이 걸린 우리는 안과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우리는 지하상가로 들어갔는데 신발에 미끄러진 동생이 철퍼덕 슬라이딩하면서 넘어졌다. 동생이 큰 소리로 “언니!”하고 소리쳤는데 창피한 나는 정신없이 도망쳐서 상가 골목에 숨었다. 동생은 울며불며 헤매다가 결국 나를 발각하고 말았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내가 슬슬 웃으니까 동생이 “여기가 언니가 나 버리고 간 데다.”했다. 창피한 걸 어쩔 것인가. 나는 중학생이었다.     


 



독일행 짐을 싸는데 내가 어찌나 잘 싸는지 짐 싸는 곳에 취직해도 되것다며 독일 가족들은 손뼉을 쳐 주었다. 파김치, 총각김치, 배추김치, 멸치볶음, 짤이를 포장하고 김치통에 넣은 후 냉온 가방에 안착. 남는 틈새에 얼린 가래떡과 얼린 번데기를 넣었다. 다시 뽁뽁이로 둘둘 두르고 테이프로 칭칭 감은 후 이민가방 한가운데에 넣었다.      

독일에 도착한 동생이 모든 짐이 무사하다고 연락이 왔다. 다행이다. 한여름에 24시간쯤 굴러다닌 짐이어서 걱정했는데 말이다. 동생은, 김치가 있는 맛있는 식사는 일주일이면 끝날것 같다고 한다.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제부는 직장으로, 조카들은 학교로 일상을 이어가겠지만 동생이 우울해질까 걱정이다. 하지만 또 독일어 공부네 뭐네 바쁠 예정일 동생에게 한국에서의 올여름은 그저 신난 기억으로만 남아 앞으로의 생활에 활력소가 되길 바랄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긴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