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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Aug 21. 2023

여름, 다 갔다

지마와 말라고

여름내, 독일에서 온 조카들의 외침으로 아침이 시작됐다.

“하지마! 하지 말라고!!!!”

뭔 일인지는 매번 다르지만 하는 말은 늘 똑같다. 툭툭 서로를 건드리고 싸우고 징징대고 고발하고 난리다. 동생은 한숨을 쉬며 언제쯤 이러한 상황이 끝이 나냐고 묻길래 그 끝은 오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일주일쯤 지나고 나서 애들 이모부는 아이들에게 ‘하지마’, ‘하지말라고’로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 ‘한’씨가 아닌 ‘하’씨로 성을 바꾸라면서 말이다. 내가 ‘지마’와 ‘말라고’로 부르겠다 하자 애들은 ‘지마’가 더 이쁘다며 서로 ‘지마’를 하겠다고 또 싸웠다. 아름다운 자매다.     


용평에 놀러 갔는데 일곱 명이 두 대의 차를 나눠 타기로 했다. 운전을 잘하는 우리 아들을 놓고 쟁탈전이 벌어졌으나 한 대는 40대 이상이 운전하는 것으로 보험을 들어서 내 차에 나, 아들, 내 동생이 타고 다른 차에는 제부, 남편, 아이들 둘이 탔다. 동생이 “언니, 형부가 뭐 잘못했어? 왜 저차에 태웠어?“ 하길래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서 내 동생과 편안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했지만 늘 퉁퉁거림을 달고 다니는 남편과 장거리 합석은 거부하고 싶었던 것이 진짜 심정이었다.     


용평 가는 길에 남편에게 두 번이나 전화가 왔다. 중간에 고속도로가 갈렸음에도 우리에게 어디쯤인지, 언제쯤 합류할 수 있는지 계속 물었다. 지마와 말라고가 뒷좌석에서 너무나도 극렬하게 싸워댄 탓이리라 짐작했다. 싸우는 두 딸과 퉁퉁대는 손윗동서를 뫼시고 운전하는 제부 힘내라 화살기도를 쏴 주었다.   

용평에 도착하자 남편은 자신의 가슴에 꼭 매고 다니는 가방에 차 열쇠를 간수하겠다고 했다. 별 의심없이 열쇠를 내주었는데, 우리는 남편이 없이는 차에 오를 수 없었다. 결국 집에 오는 차는 남편이 운전하고 나와 조카 둘이 탔다. 조카들은 큰소리로 위협하며 말하는 이모부를 무서워하지 않는다. 둘이 싸울 때마다 벌점을 주어 3점이 넘으면 각기 다른 휴게소에 내려놓겠다 으름장을 놓아도 그저 신이 났다. 아이들은 오히려 나를 무서워한다. 내 앞에서는 덜 싸운다. 뒷자리에서 둘이 끝말잇기를 하다가 싫증이 났는지 나에게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리’자로 끝나는 말로 유도한 다음 ‘리튬’하고는 끝말잇기를 끝내버렸다. 크게 웃는 남편은 나와 한 차를 타는 것으로 심신의 안정을 찾았다.     


지마와 말라고는 예쁘다. 예쁜 아이들이다. 같이 있는 동안 바느질과 캘리그라피와 수채화를 가르쳤다. 약간의 역사공부와 아~~~주 쬐끔의 세계사 공부도 함께 했다. 지마와 말라고는 아주아주 조금만 알려주어도 일취월장하는 아이들이다. 기본적인 태도가 잡혀있는 아이들이라서 가르칠 맛이 난다.  뿌리공원에 가서 '청주 한씨'와 '경주 최씨'의 뿌리를 알려주고 앞으로 가문을 빛낼 훌륭한 인재가 되거라 했더니 지마는 청주한씨가문에는 왕후가 많았다고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말했다. 말라고는 그 말을 듣고 몹시 흥분하며 자신이 걸어갈 길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듯 행동했다. 웃겨 죽겠다.

독일로 돌아갈 때 꼭 안아주고 ‘사랑한다’라고 말해줘야지 생각했지만, 아이들을 꼭 안고 ‘내 동생 괴롭히면 내가 가만두지 않겠다’라고 협박성 발언을 하고 말았다. 똑똑한 아이들이니 내 마음을 알 거라고 위로해본다.

지금쯤 제집에서 소리 지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마!, 하지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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