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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Sep 04. 2023

수연, 수현, 정현

이름 찾기

      

학교 앞에 전단지를 돌리러 갔을 때다. 학기 초엔 회원들 모집을 하려고 학교 앞에 홍보물을 돌리러 많이 나갔다. 관리자가 되고 하는 일이 거의 전단지 돌리는 것이 전부인 것 같던 날들이었다. 학교 앞에 나가면 학생들보다 학부모에게 직접 전단지를 주면 딱 좋다. 손에 쥐어준 홍보물을 덜 버리고, 관심이 있는 사람과는 그 자리에서 상담도 가능하다.

그때 멀리 지나가고 있는 사람. 고등학교 때 내 친구다. 우리는 3년 내내 가야금부였다. 학교에 가서 교실보다 더 많은 시간 머물렀던, 가야금실에서 같이 배우고 웃고 떠들던 11명의 친구들 중 하나였다.

   “*섭아!”

내가 반갑게 소리쳤다. 산책하듯 걷고 있던 *섭이는 정말 화들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50센티는 펄쩍 뛰어오른 것 같았다. 그리고는 주위를 살려보았다. 내가 다시 한번 ‘*섭아!’하고 부르며 손을 흔들었는데 나를 못 알아보았다. 그럴 것이다. 전에 친구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친구 어머니는 나를 찾고 있었다. 왜 상희는 안 오냐며 내 앞에서 물었다. 나는 아가씨 때보다 20킬로가 늘어 있었고 추억 속에 사람들은 나를 못 알아봤다.

  “나야, 상희!”

*섭이는 겨우 나를 알아보고는 깜짝 놀랐다. 놀란 것이 부풀어 오른 내 몸에 있는 줄 알았는데 자기 이름을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라고 했다. 친구는 이름을 바꾼 지 꽤 되었다고 했다. 남자이름 같아서 오래전부터 바꾸고 싶었다며 지금은 수연이라고 했다. 오랜 시간 수연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섭아!’ 하니 깜짝 놀랐다고 말이다. 괜히 큰 소리로 이름을 부른 것이 미안해졌다.     


중학교 동창 *숙이는 <살인의 추억> 이후로 이름을 바꿨다. 수현이라고 했다. 동창 모임에서 만난 *숙이는 이름처럼 고상한 사모님이 되어 있었는데 내가 자꾸 옛 이름을 부르는 실수를 했다.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뭘 잘 바꾸지 못하는 성격이다. *숙이나 *섭이한테 자꾸 원래 이름을 부른다. 새로운 이름을 부르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와 다시 우정을 쌓는 세월을 보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덕선이도 수연이로 이름을 바꿨었구나     


수연이는 정작 자기 이름을 싫어했다. 뭔가 힘이 없다는 거다. 충분히 예쁜 이름인데도 자신은 그렇게 느껴지지 않나 보다. 왠지 자신이 지나온 굴곡진 삶이 이름에서 비롯된 것 같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인생을 힘차게 살아가려면 무언가 든든하게 자신을 받쳐주는 이름이 도움이 될 거라며 기어이 개명을 했다. 정현이다. 좋은 이름이라니 그런가 보다 한다.      


주위에 개명을 한 사람들이 많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름을 바꾼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은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내가 짓지 않은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은 충분히 개선의 여지가 있으니 참 다행이다.      

어렸을 때 노트에 이런저런 예쁜 이름을 적어가며 뭔가 몹시 촌스럽고 구닥다리 같은 내 이름에 대해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냥 생각뿐이었다. 적극적으로 이름을 바꾸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스치고 지나 가는 생각이었다. 이름이 바뀌었다고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하다못해 10년 동안 쓰던 국자가 못쓰게 되었을 때 벽에 국자를 붙이고 헌정 시를 써서 두었던 나다. 하물며 50년 동안 나를 대표하는 이름을 바꾸기는 어렵다. 나는 활동명이나 예명이나 SNS의 소통명도 따로 짓지 않았다. 그냥 최상희다. 게을러서인지, 창의적이지 않는 사람이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나는 최상희다.    

  

수연이면 어떻고, 수현이면 어떻고, 정현이면 또 어떻겠는가. 모두 내 오래된 친구이다. 이름은 누군가가 불러 주었을 그 힘을 발휘한다고 한다. 새로움의 어색함을 딛고 많이 불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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