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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Sep 05. 2023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앱을 활용하세요

       

어느 날 출근을 하는데 네비가 자꾸 집으로 가라고 안내를 했다. 지워도 또 집으로 가라고 안내를 했다. 이건 뭐지? 내가 작동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안내를 하는 네비라니.. 등꼴이 오싹했다가 집으로 가보기로 했다. 남편이 대문 앞에서 내 핸드폰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바꾸고 우리 둘은 차와 연결된 앱을 깔았고 남편이 앱을 작동해서 나를 집으로 부른 것이다. 훌륭한 앱 활용이다. 나는 그런 기능이 있는지도 몰랐다. 


집에 들어가면서 작은 슈퍼에 들러서 장을 보았다. 갑자기 소나기가 퍼부어서 골목이 아니라 넓은 도로로 집으로 가고 있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비를 쫄딱 맞았다며 집 앞 어디쯤에서 자기를 태우고 가라고 했다. 비에 젖은 남편은 왜 늘 가던 골목길로 가지 않았느냐고 화를 냈다. 내가 집에 올 시간이 되어 앱을 켰더니 슈퍼에 주차되어 있길래 내가 지나감직한 골목으로 걸어오고 있었단다. 저녁에 순대국밥이나 먹자며 걷고 있는데 내가 다른 길로 가버리더란다. 아니 전화를 하지, 두발 달린 사람도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데 네발 달린 자동차야 달리고 싶은 곳으로 가는 거지 정해진 길이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하고는 잊어버렸다.     


독일에서 동생가족들이 왔을 때 출국을 앞두고 친정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나는 일이 있어서 늦게 합류할 예정이었다. 밤 11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마누라 없다고 기가 죽어 있을 사람이 아닌데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왁자지껄한 송별회 속에서 딸인지, 동생인지 나에게 대문 앞 남편의 아내맞이 이벤트에 대해 설명해 줬다. 내가 도착 예정 시간이 다가오자 앱을 켜고는 ‘지금 터널 지났다.- 지금 톨게이트 지났다.’ 하더니 나가더란다.      


     


이제 자유는 없다. 그놈의 앱으로 나의 위치를 심심하면 확인하는 남편덕에 말이다. 나는 집에 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일을 하면 퇴근이 가장 중요한 일이고, 누구를 만나도 귀가가 가장 급한 일이다. 어디 안 간다. 어디 갈까 봐 남편이 앱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뭔지, 나의 자유를 뺏긴 느낌이 든다. 차는 나에게 자유를 주었었다. 힘이 들 때 차 안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서 안정을 취하고, 차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차에서 화장을 하기도 한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 지금 삼각김밥을 먹고 있어요.’ 하며 앱이 남편에게 보고하진 않겠지만 자꾸 뭔가를 들킨 느낌이다. 자동차 앱은 반경 4킬로를 볼 수 있다는데 그게 어느 정도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억울하다.     


젊은 날 회사 점심시간에 공원에 앉아 새를 보다가 남자친구가 짠하고 나타났으면 참 좋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남자친구가 거짓말처럼 나타난 적이 있다. 텔레파시가 통했다고 깔깔 웃으며 행복했었다. 이제 그런 텔레파시를 믿으며 누군가를 기다릴 필요가 없는 세상이 왔다. 상대방을 놀라게 해 주려면 상대방이 어디 있는지 앱을 켜서 확인하고 꽃 한 다발 들고 서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앱을 제대로 사용하려는 노력조차 안 하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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