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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Sep 07. 2023

공룡이 멸종한 또 다른 이유

보따리 장사를 시작했다. 9월 들어 수요일 스케줄이 생겼는데 왕복 두 시간 거리의 지역에서 한 타임 수업이 들어왔다. 시간도 딱 애매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하기로 했다. 하다 보면 일이 더 들어오겠지 하는 약간의 기대를 품고 말이다. 이제는 규칙적인 식사, 뭐 이런 건 물 건너갔구나 생각하며 남편에게 나를 기다리지 말고 저녁식사를 하라 말하고 집을 나서는데, 남편은 기다릴테니 같이 먹자고 했다. 이건 얼른 들어와서 나의 밥을 차려라-뭐 이런 말로 들었다면 내가 꼬인 건가.     


내가 집에 8시 정도 도착할 예정이니 김치찌개를 끓여 놓으시오-삼겹살과 김치와 두부가 있으니 그냥 물을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됩니다.     


아주 정중한 명령조의 부탁을 하였으나 단박에 거절당했다. 싫단다. 그냥 삼겹살과 김치와 두부를 구워 먹겠단다.     


그것도 괜찮으니, 내가 도착하면 딱 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부탁하오.     


‘나는 저녁 밥상을 차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알겠단다. 일을 끝내고 집에 도착했을 때 대문을 열자마자 삼겹살 냄새가 풍겨왔다. 고프지 않았던 배에서 꼬로록 소리가 났다. 불판에서 삼겹살과 김치가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상추와 깻잎, 그리고 쌈장, 마늘, 고추. 아주 단출하지만 다른 것이 필요 없는 훌륭한 밥상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남편은 얼른 한쌈 먹으라고 재촉한다. 배고픈 마음에 커다랗게 쌈을 싸서 먹는다.

      

슬퍼.  

   

뭔 소리여? 맛이 없어?   

  

아니, 너무 맛있어. 언젠가부터 돼지고기를 보면, 살아 있을 때 꿀꿀거리며 신나게 뛰어다니는 돼지가 생각이 나서, 쫌 마음이 그랬는데..... 맛있어. 안 먹을 수가 없어. 맛있어서 슬퍼.  

   

별   

  

타박을 하며 소주 한 잔 들이킨 남편이 말했다.    

 

공룡이 맛있었으면 멸종되지 않았을 걸?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키워내서 잡아먹고, 키어내서 잡아먹고 그랬을 거야.     


아, 공룡은 맛이 없어서 멸종이 되었구나. 신박하다. 이 남자. 공룡이 왜 멸종되었는지 진실이 뭐가 중요한가. 빙하기가 어쩌고 화산 대폭발이 어쩌고 운석과의 충돌 어쩌고 이런 말은 필요하지 않다. 

     

다정하고 싶은 남편은 땀을 흘리는 내게 앞뚜껑이 날아간 선풍기를 틀어준다. 시원하지만 무서웠던 내가, 혹시 날개가 날아와서 나를 공격하면 내가 죽을 때까지 병원주위를 돌지 말고 바로 응급실로 데려가 달라고 눙쳤다. 어차피 서로 죽어봐야 사망보험금이 장례비용정도밖에 나오지 않으니 더 벌어줘야 한다며 서로 죽지말고 조금 더 벌자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남은 고기에 밥을 볶아 먹는 초가을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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