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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06. 2023

또 싸웠어?

헤어져

모임방 이름이 덤엔더머다. 학창 시절부터 알던 친구들이 만난 지 벌써 몇십 년째다. 멤버는 모두 4명. 일주일이 멀다 하고 만나서 술 마시고 수다 떨고 서로의 아픔에 서로 끌어안고 한참을 울고, 그리고 싸운다. 지긋지긋하다. 머리 허연 남자 넷이 하는 모양새다.


친구들과 골프를 치러 갔던 남편이 씩씩 거리며 들어왔다. 친구들이 다퉜단다. 들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이가 쉰이 넘었는데 밥값이나, 기름값이나 뭐 그런 걸로 싸운다. 농담으로 한 이야기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다투고, 자신의  생각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농담으로 치부당해서 벌어지는 일들. 다큐인지 코미디인지 장르를 정하지 못하고 뒤죽박죽 헷갈리다 결국 다투는 모양새.


한번은 후유증이 오래갔는데 모임 깨고 모두 모른척하고 살자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러. 던. 어. 느. 날. 셋이 모여서 술을 진탕 마시더니(내가 운전해 주러 갔었다) 영, 마음을 돌리지 않는 한 친구한테 전화해서 우정을 다짐하고 네가 없으니 외롭다며 한 사람이 울었다. 전화를 돌려가며 세 명이 모두 통화를 하고는 다 같이 또 울었다. 식당이었다.

나는

몹시

창피했다.


아니, 그럴 것 같으면 이제 그만 헤어져! 


다시는 안 만나겠다면서도 꺼칠한 얼굴로 친구들과 보낸 시절에 대해, 누구와의 만남 보다도 우선했던 지난날에 대해, 후회하고 속상해하고 허무해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입바른 소리가 튀어나왔다. 나이는 먹어가지고 친구들이랑 싸우고 다니고 뭐 하는 거냐고 비죽대고 며칠 지나면 또 같이 놀러 다닐 거면서 괜히 폼 잡는다고 놀렸다. 남편은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아이스크림이랑 과자 사 줄 테니 나가자.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먹으면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 남편은 과자랑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단 한 번도 거절당해보지 않은 제안을 오늘 거절당했다. 싫단다. 마음의 상처가 깊은 모양이다. 이럴 때는 그냥 좀 조용히 두어야 한다. 누가 잘했네 못했네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생존이 아닌, 즐거움을 위한 먹을거리를 찾는 그날이 오길 기다려야겠다. 상처가 덧나지 않고 나아서 흉터를 바라보며 서로 조심하는 덤엔더머의 모임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내가 충고랍시고 헤어지라고 해서 헤어지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니가 헤어지라매'할까 봐 살짝 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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