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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05. 2023

포도 농사

망했어요

남편은 작년 식목일 즈음에 포도모종을 세 개 사 왔다. 두 포기는 낯선 땅에 자리를 잡지 못했고 한 포기만 살아남았다. 샤인머스켓이라고 했다. 이제 집에서 샤인머스켓을 따 먹을 수 있게 되었다며, 유튭에서 한그루에 천송이의 포도가 열리는 것을(?) 봤다며 천송이는 아니더라도 백송이는 달리게 해 보겠다며 열정을 불태웠다. 포도 집을 짓고 순을 따며 영상으로 배운 농사를 실천했다.  


샤인은 잘 자랐고 작년에는 다섯 송이, 올해는 서른 송이쯤 열렸다. 동네방네 자랑을 하며 포도가 익으면 몇 송이 나누겠다고 예약 배송을 스스로 하고 다녔다. 작년에는 그 다섯 송이를 언제 어떻게 따 먹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대단히 맛이 없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올해는 작년의 실패를 거울삼아 남편이 야심 차게 길렀기 때문에 달콤한 수확의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에 포도와 샤인머스켓이 등장을 하면서 우리 집 포도는 언제 따려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데 남편은 기다리란다. 연두연두한 포도송이에 노란빛이 약간 들어야 익은 거란다. 내가 아는 샤인은 탱탱한 연두색이던데 우리 집 거는 노란빛이 돌아야 익은 거라니 기다릴 수밖에.


다른 집 포도는 모두 출하를 하는데 우리는 농사에 필요한 물품을 파는 가게에 가서 포도를 싸는 종이를 사러 갔다.  까치가 와서 자꾸 쪼아 먹었기 때문에 예정에 없던 포도송이 싸는 작업을 했다. 남편은 포도를 싸고 나서 2,3주쯤 있다가 따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샤인이라고는 먹어나 봤지 길러본 일이 없는 나는 의심을 거두고 기다렸다.


2주 내내 비가 왔다. 2주가 지나고 포도를 싸 놨던 종이를 벗기니 포도알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썩어 있었다. 급히 포도를 수확해 보니 봄에 예상했던 것보다 몹시도 적은 양이었다. 맛도 그냥저냥, 씨도 많이 들어 있었다. 그래도 그중에서 젤 예쁜 것들을 골라서 미리 주겠다 약속한 집으로 세 송이씩 돌렸다. 

남동생네도 다섯 송이쯤 배달을 했는데 이번 추석 선물로 쌔끈하게 빠진 샤인머스캣 한 박스를 선물로 사 왔다. 절대 우리의 포도가 어떻다 하고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포도 농사는 망했다. 추석에 친척들이 모두 모였을 때 우리가 농사지은 샤인과 선물 받은 샤인을 씻어오니 모두 사 온 것을 먹었다. 역시, 망했다.


노랗게 색이 변한 것이 익은 것이 아니라 이미 익어 있었다는 것, 딸 시기를 놓쳤다는 것을 겪고 나서야 깨달은 남편은 내년의 농사를 다시 계획한다. 너무 수확시기가 늦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에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하더니 이제 올해보다 수확시기를 당겨보겠다고 말한다. 경험만큼 좋은 공부는 없다. 유튭만 보고 다 아는 듯 말하지 말자. 직접 경험해서 자신의 실력으로 쌓아 프로 농사꾼이 되어가는 남편을 칭찬한다. 진짜 백송이 열리면 장사를 해야겠다. 아하하하! 샤인머스캣 팔아서 부자 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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