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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04. 2023

흰 바지와 긴 머리

아기 엄마 사람

 밤산책을 나섰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유아차를 끌고 부부가 지나간다. 산뜻한 밤바람에 아이 엄마의 긴 머리칼이 날렸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머리카락이 긴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데도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기를 키울 때 하얀 바지를 입거나 머리를 풀고 다니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기를 돌보면서 집안일을 하려면 등에 업는 것이 최고인데 머리가 길었던 나는 머리를 올려 묶어 머리칼이 아기얼굴을 간지럽히지 않게 했다. 아기가 버둥거리다 포대기 속에 넣어 둔 손이 자유로워지면 얄짤없이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겼기 때문에 머리칼을 잘라야 하나 고민도 많았었지만 어릴 때부터 늘 긴 머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르고 싶지는 않았다. 아기가 자라 이제 아장아장 돌아다닐 때는 일을 저지르고 도망가는 아이를 낚아채서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일도 허다해서 옷마무새가 깔끔할 수도 없었다. 바지에는 아이의 발자국과 흙이 묻어 있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느 날 만난 친구가 하얀 바지를 입고 긴 머리칼을 휘날리고 있었다. 그 친구도 아기 엄마였는데 말이다. 아기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깨끗할 수 있는지 몹시 부러웠다. 머리칼을 한껏 올리고 아기를 업은 꾀죄죄한 내 모습이 몹시 초라하게 느껴져 내 사는 꼴은 왜 이럴지 한숨이 푹푹 나왔더랬다.


아기를 키우는 엄마는 치장을 할 수가 없다. 아기랑 뽀뽀를 해야 하니 화장을 할 수 없다. 화장 안 한 얼굴. 시시때때로 밤잠을 깨는 아이 때문에 잠을 못 자 푸석거리는 피부와 엉망진창 그저 대충 묶은 머리카락과 활동하기 편하고 빨기 쉽고 때 안 타는 색깔의 옷을 입은 여자사람. 그것이 아기 엄마의 모습이다. 새벽 3시까지 집을 치우다 엉엉 울던 날들. 도저히 깨끗해지지 않은 집을 언제까지 보아야 하나 답답했었다.


지금은 집을 어지르는 사람은 큰아들밖에 없지만 그도 눈치가 생겨서 치우는 시늉은 한다. 정말 아이를 키울 때 생각하면 지금은 할 일이 하나도 없는 듯이 느껴진다. 이제 나름 한가하게 지내고 있다. 밤산책을 나올 정도로 말이다.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유아차를 끌고 가는 젊은 부부가 참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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