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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03. 2023

우리 집은 거실이 제일 시원해

가을이 왔어요

우리 집은 에어컨이 하나다. 요즘엔 다들 방방마다 하나씩 있던데 우리 집에는 25년 전 아들이 태어났던 해, 겨우 백일 지난 아기가 잠을 못 자고 하도 울어대서 에산에 없던 에어컨을 들어왔었다. 아기는 에어컨을 틀자 울지 않고 잘 잤다. 


처음에는 에어컨이 있어도 잘 켜지 않았다. 뭔가 막 전기세가 엄청 나올 것 같고, 에어컨 있다고 잘난 척하는 것 같고,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고 그랬다. 한 여름 선풍기에 의존하며 에어컨은 바라만 보고 있으면 갑자기 같은 동네 살던 동생이 나타나 에어컨을 켰다. 


언니, 에어컨을 왜 안 켜는 거야? 나 시원한 바람 쐬러 왔어


한다. 남편은 처제가 나타나서 에어컨을 켜면 무조건 오케이다. 덕분에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원하게 보내고는 했다. 




전에는 에어컨이건 선풍기건 인공 바람을 맞으면 머리가 아팠다. 나는 자연 바람이 좋다며 부채질이나 슬슬 하고 그랬는데 몇 년 전부터는 에어컨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몸에 열이 꽉 들어차서 겨울에도 조그만 선풍기를 가끔씩 쐴 정도다. 그래도 혼자 집에 있을 때 에어컨을 켜는 건 좀 익숙하지 않다. 나를 위한 일인데도 몹시 낭비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여름휴가 때 집에 혼자 있으면 더 그렇다.

 

거실 한쪽에 당당하게 자리 잡은 에어컨은 일 년에 몇 달만 일을 해서인지 아직까지 잘 돌아간다. 시원한 바람이 쑹쑹 나온다. 


에어컨이 거실에 하나 있다 보니 여름에는 모두 방문을 열어 놓는다. 그래야 에어컨에서 나오는 차가운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인데 생각해 보면 너무 웃긴다. 그냥 거실에서 잘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방문을 열어 놓았대도 침대에서 땀을 찔찔 흘리다가 거실로 나오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우리 식구는 거실에 에어컨을 켜 놓고 각자의 방에서 땀을 흘리며 잔다. 우리 집은 거실이 제일 시원하다.





이미 2023년의 임무를 끝낸 에어컨은 한 달쯤 쉬고 있지만, 9월 한 달 동안에도 한낮에는 30도가 넘어가다 보니 에어컨을 켜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다. 날짜로 보면 이미 활동을 끝낼 때라서 그를 간절히 바라지만 다시 소환하기가 애매해서 선풍기에 의지해서 땀을 식히곤 했었는데, 이제 정말 가을이 왔나 보다. 간사한 내 몸이 춥단다. 아침이 되면 재채기를 삼백번 한다. 반팔을 입고는 견딜 수가 없단다. 


우리 집은 거실이 제일 따뜻하다. 거실에만 전기요를 깔아 놓는다. 넓고 큰 것으로 준비했다. 전기요는 피를 마르게 한다며 내가 침대 위에 놓은 것을 극구 반대했었는데 이제 거실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것은 방문을 열어놔 봤자 방안이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물론 보일러가 집안을 따뜻하게 데워주지만 전기요의 쫙쫙 달라붙는 따뜻함은 못 이길 것이다. 진정한 가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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