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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08. 2023

새삥

좋네 좋아

전등갓을 새로 샀다. 집안에 다른 모든 것은 낡고 전등갓 혼자 새것이어서 약간의 어색함이 있지만 그래도 새것은 늘 기분이 좋다.


처음 이 집에 이사를 오고 나서 깊은 계단 위쪽에 전등이 하나 덩그러니 있는데 예쁜 갓을 씌워주고 싶었다. 문구점에 가서 고운 한지와 굵은 철사를 사서 학교에서 전등갓을 만들었던 기억을 총동원해서 만들었었다. 한지로 만든 사각 전등갓은 그 자리에서 스무 해를 버텼다.


전등갓을 씌운 전등이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문득 보면 뽀얀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다른 것으로 바꿔야지 하면서도 또 금세 잊었다. 오늘 딸과 아이쇼핑을 하다가 아주 깔끔한 전등갓을 보고 딱 우리 집 물건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혹시라도 더 맘에 드는 것이 있을까 다른 것들도 꼼꼼하게 살폈지만 과하지 않고 단아한 이 전등갓을 집으로 모셔왔다. 안쪽은 탄탄한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고 겉은 촘촘하게 부채접기를 한 하얀 종이를 둘렀다. 깔끔 그 자체다.


집에 오자마자 전등갓을 바꿔 달았다. 오랫동안 어두운 계단을 비춰주고 은은함까지 제공하던 사각한지 전등갓을 떼고 산뜻하고 하얀, 누가봐도 전등갓의 모양을 한 전등갓으로 바꾸니 계단이 훨씬 밝아졌다. 내가 워낙 미련이 많은 성격이라 손잡이가 부러진 가위도 버리지 못하고 애도의 시를 적어서 함께 벽에 붙여두고는 했었는데, 그러기엔 한쪽에 떼 놓은 이 녀석은 너무 낡았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하고 작게 접어서 버렸다.


전등갓 하나 바꿨을 뿐인데 집이 환해진 것 같다. 계단이 환해지니 내 마음도 환해진다. 행복이라는 건 참, 별것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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