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상희 Oct 11. 2023

쓰고 질긴 아픈 기억

완득이 아버지가 좋아합니다.

갓 결혼을 하고 신혼이었을 때 시댁에 갔는데 시아주버님께서 붕어로 찌개를 끓여달라고 하셨다. 집 앞 냇가에서 잡아왔다며 소주 한잔 하시고 싶다고 하샸다. 민물고기로 음식을 만들어 본경험도 없을뿐더러 붕어를 어떻게 손질해야 하는지를 몰라 난감해했더니 아주버님은 이미 붕어 배는 다 따서 씻어 두었으니 양념만 해서 끓이면 된다고 하셨다. 지글 보글 나름 맛있게 끊인다고 끓여서 밥상에 내놓으니 벌써 소주까지 준비해 놓으셨다. 시댁식구들이 둘러앉아 붕어찌개를 먹는데 한 숟갈 뜨고 다들 얼굴을 찌푸리셨다. 쓰단다. 붕어뱃속에 든 슬개를 빼고 했어야 했단다. 나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도 못알아 들었다. 평소에 음식을 만드는 동안 따로 간을 맛보지 않는 편이어서 붕어찌개가 쓰다는 것을 시댁 어른들이 먼저 알게 된 것이다. 냄비째 버려진 붕어찌개는 쓰라린 실패의 기억이다.


어느날 시댁에서 밥을 하려고 하는데 집 밖에서 스피커에서 닭을 판다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으로 닭볶음탕을 하면 딱 좋을것 같았다. 밖에 나가보니 트럭에 튼실한 닭이 잔뜩 실려있었다. 식구가 많으니 큰 놈으로 두 마리를 샀다. 볶아 먹게 잘게 잘라 달라고 했더니 턱턱 잘라서 주었다. 감자랑 양파랑 넣고 보글보글 벌겋게 끊인 닭볶음탕은 국물맛이 기가 막혔다. 시댁 식구들이 둘러 앉았다. 시아주버님이 고기 한 점을 들고 맛있게도 씹으셨다. 계속 씹으셨다. 씹다 씹다 뱉으셨다. 


제수씨, 닭 어디서 샀어요?


집 앞에 차로 와서 팔더라 했더니 그건 폐계닭이라서 볶아 먹는게 아니라 한두 시간 백숙으로 푹푹 끊여서 먹는 거라고 했다. 김려령의 소설 '완득이'아버지가 좋아하던 그 폐계닭. 똥주선생이 폐계닭을 먹고 이게 고무여 뭐여 했던..... 아주버님은 양념은 맛이 있다며 가위를 가져와서 탱글탱글한 고기를 잘게 잘라서 소주와 함께 드셨다. 질긴 실패의 기억이다.


한상 뚝딱 차려내는 음식솜씨는 아마도 그러한 나날이 모여서 만드어졌을 것이다. 쓰고 질긴 실패의 기억은 나에게 요리에 대해 좀 더 탐구하게 만들었다. 오늘 저녁, 닭볶음탕에 들어있는 닭 한 마리를 둘이서 다 뜯어먹고는 퉁퉁해진 배를 두드리며 옛 기억을 떠올려본다. 이 보들보들한 살을 가위로 잘라먹을 정도면 - 할 말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과자 사러 가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