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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12. 2023

목검을 등에 지고

맘 편히 산책하고 파

여름에는 날씨를 탓하며 잠시 걷기 운동을 등한시했더니 옆구리에 살이 한주먹은 붙은 것 같다. 아침나절에는 이래저래 바빠서 저녁산책을 살살 다니고 있는데 남편이 한걱정한다. 뉴스에 여러 가지 험악한 일들이 자꾸 오르내리니 산책이고 걷기고 되도록 하지 말란다. 자신과 함께 움직이는 것만 허락한다. 내가 외진 곳을 좋아하는 탓이기도 하다. 되도록 사람이나 차가 드문 곳을 찾아 걷는다. 한적한 곳을 걷다 보면 운동도 되지만 심신이 안정되어서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복잡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끔 산에도 올랐는데 산은 더욱 위험하다고 난리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사람이었다니.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서 산도 보고 하늘도 보고 들꽃도 들여다보면서 내 맘대로 걷고 싶은데,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안에서 스텝퍼를 밟으면 재미도 없고, 남편과 같이 걸으면 걸음 속도도 맞춰야 하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 화난 사람 같아 보이니까 쫑알쫑알 말도 해야 하니 쓰지 않았던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이 약간의 피곤함을 가져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도 위험하다고 하니 위험하지 않게 걸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침대 한쪽에 세워져 있는 목검이 떠올랐다. 심심할 때 마당에서 몇 번 휘두르거나 침대 밑에 리모컨이나 핸드폰이 빠졌을 때 휘휘 저어 꺼내는 용도로 쓰고 있다. 


아가씨였을 때 전통무예를 배울 때 썼던 목검이다. 검은 천으로 된 검집이 있어서 칼을 넣어 꽉 묶은 후에 어깨에 사선으로 메고 다녔다. 검과 함께 있을 때는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도 비가 오는 날 우산을 들고 가면 무서울 것이 없다. 지금은 검집은 어디 갔는지 없어져버리고 맨몸의 목검만 안방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검을 보면 맨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나도 날렵한 때가 있었는데'이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근 이십 년 만에 관장님과 마주친 적이 있는데


아니, 최사범! 전에는 휙휙 날아다니더니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어쩌다 뚱땡이 아줌마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는 몹시 실망하셨었다. 각설하고,


남편에게 포장용 황금 보자기를 내밀며 이것으로 검을 싸서 등에 메고 다니겠다고 했다. 그러면 나쁜 사람을 만난다든가, 칼을 들고 설치는 사람을 만나도 내 몸하나는 지킬 수 있으니 목검을 메고 혼자서 걷기 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너, 어떤 정신 나간 여자가 보자기에 싼 목검을 들고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고 신고당해! 뉴스에 나온다고!


아, 그것까지는 생각 못했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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