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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17. 2023

벽지 바르기

쉬울 것 같지?

신혼집을 꾸밀 때였다. 오래된 아파트여서 내부를 손봐야 했지만, 있는 돈으로 집을 구하고 가전제품을 갖추고 나니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안방 벽지를 바꾸는 것만으로 내부인테리어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람을 사서 바르자니 까짓것, 우리 둘이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 벽지를 고르고 풀과 빗자루까지 야무지게 사서 집에 왔다. 벽지에 풀을 바를 때는 빗자루로 쓱쓱 바르는 거라고 남편이 말했다. 우리는 의기투합해서 벽지를 바르기 시작했다. 두루마리 벽지를 크기에 맞게 잘라 남편이 풀을 쓱쓱 바르고, 함께 벽에 붙이고, 다시 빗자루로 벽을 한번 쓱쓱 쓸었다. 벽은 네 면이고 천장까지 하면 다섯 면을 해야 하는데 두면을 하고 나니 너무나도 힘들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만만해 보았던 벽지 바르기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하게 힘들었지만 할 수 있다고 제차 다짐하며 우리는 더 기운이 빠지기 전에 벽면을 포기하고 천장에 벽지를 바르기로 했다. 그런데 경험이 없는 우리는 천장에 벽지를 바르려면 밟고 올라설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몰랐었다. 난감해하고 있다가 밖에서 누가 버리려고 내다 놓은 화장대를 하나 주워와서는 밟았다. 벽을 바를 때 보조를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천장을 바를 때 깨달았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풀을 바른 기다란 벽지를 남편이 한쪽에 붙이기 시작하면 맨 끝을 잡고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계속 두 손을 번쩍 들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벽지를 들고 있어야 했다.


우리는 결국 세면의 벽과 천장에 벽지 바르기 작업을 하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바르지 않은 한쪽면에는 장롱을 놓기로 했다. 그렇게 열심히 발라놓은 벽지는 예쁘게 벽에 붙어 있지 않고 온통 쪼글쪼글해져서 안방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분명 쫙쫙 펴서 발랐는데 말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벽지에 풀을 칠한 후에 충분히 불리는 시간을 주어야 벽에 팽팽하게 붙는다고 한다. 그것을 몰랐다.


그날 밤, 자다가 펑펑 울었다. 팔이 욱신욱신 쑤셔서 잠을 잘 수 없었던 것 사실이지만 뭔가 몹시 서러워져서였던 것 같다. 다음에 벽지를 바를 일이 있으면 꼭 사람을 써서 하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하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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