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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19. 2023

지혜의 상징, 부엉이

미네르바의 부엉이

지인들과 전북 고창에 있는 '책마을 해리'에 갔다.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몄다는데 아기자기하면서도 알차게 꾸며 놓아서 볼거리가 많았다. 책마을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8천 원을 내는 것과 도서 1권을 구입하는 것 중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책을 한 권씩 구입하는 것으로 입장권을 대신했다. 다들 지식과 지혜를 충족시킬만한 책을 골랐지만 나는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채워줄 '망그러진 만화'를 골랐다. 뿌듯했지만 약간 민망해진 나는 유선경 님의 '어른의 어휘력'도 추가 구매했다.


  서점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니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있는 운동장이 나타난다. 운동장 한편에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그 나무 위에 집이 있다. 만화책에 보았음직한 트리하우스다. 작고 예쁘고 아늑해서 책 한 권 들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창밖으로 벼가 누렇게 익은 논을 바라보다가, 파아란 하늘을 쳐다보다가, 잠시 눈을 감고 있어도 좋은 공간이다. 트리하우스 바로 옆에 딱 트리하우스만 한 부엉이건물이 하나 있는데 그곳도 작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놨다. 아주 작은 입구와 아주 좁은 계단이어서 아이들이 들어가서 책을 읽기 적당하다. 책 읽을 공간을 여러 곳에 마련해 놓아서 책마을이라는 이름이 어색하지 않다. 그러고 보니 책마을 해리 입구에 자리한 책방에서부터 부엉이 모양의 상품들이 많이 보인다. '책'을 읽느라 밤을 새는 이미지를 지혜와 연관 지어 부엉이를 마스코트로 삼았을 거라 짐작해 본다. 실제 책마을 안에 부엉이가 살고 있단다. 부엉이를 보니 괜히 반갑다. 딸이 졸업한 학교의 마스코트도 부엉이였다. '미네르바의 부엉이'- 지혜의 상징이다. 부엉이'BOO'가 과잠을 입고 있는 인형을 보면 지혜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술배로 빵빵한 귀염둥이 같다.


가을은 가족들과 캠핑 가기 놓은 계절이라거나, 맛집 탐방하기 좋은 계절이라거나, 코스모스나 핑크뮬리를 보러 가는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장소에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사진 찍고 SNS에 올려 자랑을 한다. 독서의 계절이 가을인 것을 잊은 것 같다. 사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책을 읽기 아까운 계절인 것은 사실이지만, 가을이 가기 전에 한 권의 책이라도 읽었으면 좋겠다. 꼭 지혜를 얻는 책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1 가구에 부엉이 한 마리씩 보급해서 저녁식사 후에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책을 읽는지 아닌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게 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책마을 해리'에서 책을 손엔 들고 슬슬 걸어 다니며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구경하고 오래된 책 냄새를 맡으며 도서관을 배회하고 플라타너스 트리하우스에 올라가 들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책 한 권을 읽은 느낌이었다. 책은 집에 가서 읽겠다고 다짐했던 나, 부엉이는 우리 집에 데리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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