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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21. 2023

까망이의 평화

이제야 아이 같아요

까망이는 아들이 키우는 강아지이다. 파양 된 아이를 입양했다. 태어난 지 1년 정도 된 것으로 추청 했는데 그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극도로 예민한 아이였다. 가까이만 가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댔다. 남편은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대는 까망이때문에 속앓이를 했다. 어디 감히 이를 드러내냐며 확-하고 손을 들어 때리는 시늉을 하고는 했다. 그러면 까망이는 더 으르렁거리고 가까이 다가가면 정말 물어버렸다. 그러고는 벌벌 떨었다.


나는 나에게 으르렁대는 동물을 본 적이 없다. 내가 길을 가면 길고양이들이 쫓아오며 자기를 집에 데려가라고 하소연을 했다. 주인과 같이 있는 개도 나에게 와서 한번 만져보라며 머리를 디밀었다. 그런데 까망이에게 물렸다. 물린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까망이의 하찮은 이빨에 더 놀랬다. 이건 뭐 놀란것에 비하면 정말 하나도 안 아팠다. 아프지도 않은 작디작은 이빨로 뭘 물겠다고 덤비다니.. 어지간히 겁이 많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까망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딸이란다. 아빠 왔다, 이러면서 애지중지했다. 그래서였을까? 까망이가 이를 드러내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내 뒤를 쫄랑쫄랑 쫓아오기까지 했다. 나는 필살기를 쓰기로 했다. 까망이가 맛있어할 것들을 먹였다. 하도 조그마한 강아지라서 쪼끔밖에 못 먹였지만 슬슬 나에게 충성을 맹세하기 시작했다. 하핫


추석을 지내며 차례상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까망이는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 사료만 먹었던 까망이는 식탁이 아닌 차례상이 차려진 음식을 보고야 만 것이다. 짧은 두 다리로 그렇게 오래 서 있을 줄 몰랐다. 안 그래도 똥그란 눈을 더 똥그랗게 뜨고 두 다리를 번쩍 들고 차례상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그런 까망이에게 차례가 끝난 후 동태전 하나를 하사했다. 까망이는 동태전을 먹고는 혓바닥이 고장 난 것처럼 혀를 이리저리 핥아대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저녁에는 온 식구들이 모여서 갈비를 구워 먹었는데  살코기만 골라서 작게 잘라 주었다. 포도는 주면 안 된다고 해서 우리 집에서 딴 샤인머스켓을 못 먹인 게 아쉽기는 했지만 배도 야무지게 잘라서 먹였다. 까망이는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꼭 나라서가 아니라 남편에게도 현저하게 으러렁거리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깡 말랐던 몸에 살이 붙었다. 얼굴에서도 편안함이 묻어났다. 축 쳐져있던 귀가 서고 다리사이로 감췄던 꼬리가 점점 올라갔다. 나를 보면 뭐 맛있는 거 안 줘요? 하고 묻는 눈으로 바라본다. 나는 사람이고 동물이고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안하면 맛있을 것을 먹고 싶어 한다고 믿는다.


까망이는 가족이 된 지 5개월 만에야 우리를 믿기 시작했다. 까칠한 사춘기 아이처럼 불안과 공포가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아이가, 지금은 뭐 맛있는 거 안주나 하며 아이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갸웃하고 내 손을 바라본다. 혹시 나쁜 기억이 있었다면 우리와의 행복한 일상으로 덮었으면 한다. 지금 까망이는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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