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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Oct 23. 2023

취향의 일관성

나는 핑크공주가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오래 살지 못하고 서른 중반이면 죽을 것 같았다. 늙어가는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이걸 보고 네가 생각났어-하는 것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죽으면 완전히 잊히기를 바랐다.


친구는 멀리서 보아도 나를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항상 나는 한쪽 주머니에 손을 꽂고 약간 비스듬히 서 있다고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연습을 했다. 아가씨 때 다니던 회사에서는 비가 오면 최양이 떠오른다고 모두 말했다. 내가 주야장천 비와 관련된 노래를 사무실에 틀어놨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정된 이미지가 싫었다. 사실 핑크색을 좋아하지만 옷을 살 때도 핑크색을 고르지 않았다. 소품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지만 실용적이고 단순한 것을 골랐다. 그러면서 슬슬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노력이 실패했음을 알게 되었다.


동생이 사다준 그림, 이 사준 노트의 겉표지를 보면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이다.

 동생이 사준 노트북, 지인이 입고 있던 것을 뺏어 입은 카디건등등 모두 핑크색이다. 내가 모르는 나의 취향을 남들이 알고 있다. 내 취향에 맞는 것은 사실 내가 산 물건이 아니라 남이 사 준 물건에서 나타난다.


선물할 때 얼마나 고민이 많은가.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주로 하는 생각은 무엇인지, 그가 주로 쓰는 물건은 무엇인지 두루두루 살피지 않고서는 선물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다. 나 주위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잘 알고 있다. 나에 대해서 나만 모르는 것 같다.


무언가를 보고 나를 떠올린다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를 사랑한 당신들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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