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오래 살지 못하고 서른 중반이면 죽을 것 같았다. 늙어가는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이걸 보고 네가 생각났어-하는 것들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죽으면 완전히 잊히기를 바랐다.
친구는 멀리서 보아도 나를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항상 나는 한쪽 주머니에 손을 꽂고 약간 비스듬히 서 있다고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손을 빼는 연습을 했다. 아가씨 때 다니던 회사에서는 비가 오면 최양이 떠오른다고 모두 말했다. 내가 주야장천 비와 관련된 노래를 사무실에 틀어놨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정된 이미지가 싫었다. 사실 핑크색을 좋아하지만 옷을 살 때도 핑크색을 고르지 않았다. 소품도 예쁘고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하지만 실용적이고 단순한 것을 골랐다. 그러면서 슬슬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노력이 실패했음을 알게 되었다.
동생이 사다준 그림, 딸이 사준 노트의 겉표지를 보면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이다.
동생이 사준 노트북, 지인이 입고 있던 것을 뺏어 입은 카디건등등 모두 핑크색이다. 내가 모르는 나의 취향을 남들이 알고 있다. 내 취향에 맞는 것은 사실 내가 산 물건이 아니라 남이 사 준 물건에서 나타난다.
선물할 때 얼마나 고민이 많은가.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가 주로 하는 생각은 무엇인지, 그가 주로 쓰는 물건은 무엇인지 두루두루 살피지 않고서는 선물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다. 나 주위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잘 알고 있다. 나에 대해서 나만 모르는 것 같다.
무언가를 보고 나를 떠올린다면 내 잘못이 아니다. 나를 사랑한 당신들의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