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희야 놀자~

동생하고 놀기

by 배추흰나비

어릴 때 살던 우리 집은 산을 깎고 지어서 신작로까지 내려오다 보면 골목골목이 많았다. 그 골목에서 나는 친구들과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삔 치기, 구슬치기, 소꿉놀이 등등을 하며 놀았다. 그런데 동생 영희가 자라서 나를 졸졸 쫒아다니게 되면서 자유가 사라졌다. 영희는 자꾸 나를 쫓아다녔다. 내가 밥숟가락을 놓고 일어서면 '온니, 어디가?' 하며 엄마 치맛자락 붙잡고 쫒아다니듯 따라다녔다. 엄마는 동생이랑 같이 놀아라 했지만 친구들과 노는데 동생을 데리고 다닌다는 것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고무줄놀이를 하면 저도 뛰겠다고 하고서 줄을 엉키게 만들었다. 숨바꼭질을 해도 꼭 머리통만 감춰서 금방 들켰다.


같이 놀던 친구들과 언니들은 동생을 데리고 왔다고 나무라지 않았다. 깍두기로 놀이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줬다. 새로 놀이에 참여하게 되었다던가, 너무 어려서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깍두기의 직책이 주어진다.

깍두기는 두 팀 모두의 팀원이 되어 놀이에 참여할 수 있다. 요즘 말로 같은 핸디캡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미안함을 감수하고 영희를 데리고 놀다 보면 꼭 집에 가고 싶다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배가 고프다고 난리가 나기 시작한다. 영희와 함께 논다는 것은 나의 희생이 따라야 했다. 나는 어렸고 희생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면 눈치를 쓱 살피다 영희가 엄마한테 김 한 장 더 달라고 떼를 쓸 때쯤 후다다닥 튀었다. 영희가 놀라서 "언니!!!"하고 쫓아 나오는 게 느껴지거나 말거나 우선 뛴 다음에 잘 들키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가 숨을 참고 있노라면 영희가 울며불며 신작로 쪽으로 냅다 뛰어가는 게 보인다. 동생이 지나가면 한 템포 숨을 고른 후 반대쪽 골목으로 돌아 친구들과 놀기로 약속한 장소로 가면 된다.


영희는 똑똑한 아이여서 결국엔 나를 찾아냈지만 잠시라도 자유롭고 싶었던 나는 골목에 숨기를 자주 했었다. 내가 학교에 가려고 아침밥을 먹고 있으면 동생은 어디서 가져온 빈 가방을 메고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학교에 갈 때 언니를 쫓아가겠다고 울며 떼쓰는 영희를 떼어 놓는 것이 제일 힘들었었다.


영희도 지금 나이가 오십인데 자신이 해 먹은 음식 사진을 보내주면 그게 그렇게 기특하다. 독일에서 김치를 담고 김말이를 튀기고 곰국을 끓여서 가족에게 먹인다. 회사 다닐 때 보다 더 기특하다. 영희가 잘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지금도 우당탕탕 현관문 열어젖히고 "언니! 한 서방이!" 막 이러면서 들어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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