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져야 할 것들

그림 있는 이야기

by 배추흰나비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젊었을 때는 그 사랑에 목말라하며 울기도 많이 울었더랬다. 결혼을 하고 나면 그 메마름이 가실 줄 알았는데 남편은 몹시도 무뚝뚝해서 오히려 더 나를 외롭게 했었다.


그런 남편이 자꾸 내 핸드백이라도 된 것처럼 따라다닌다. 누굴 만나는지, 어딜 가는지 묻고, 무얼 먹는지 물어본다. 몹시 귀찮다. 원래 그랬었으면 귀찮지 않았을 텐데 안 그러던 사람이 그러니 어떨 때는 숨이 막힐 지경이다. 눈치를 봐서 자신이 껴도 될 것 같으면 슬쩍 모임에 합석을 하기도 한다. 각자 사회생활하던 우리는 각자의 스케줄대로 움직였고, 나는 남편에 대해 밖에서 늦은 시간까지 놀다 와도 살아만 돌아와라 뭐 이런 주의였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남편이 자꾸 따라다닌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모임이 있을 때 나는 내가 운전해서 간다고 해도 태워주겠다고 하고, 버스 타고 간다고 해도 태워주겠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 유튭을 보고 있던 남편이 갑자자기 일어나서 약속 장소까지 태워주겠다고 하면 화가 나는 거다. 그냥 편히 누워계시면 될 것을 씻고 입고하는 것을 맥없이 기다려야 한다. 날씨가 추우니 태워주겠다고 사랑과 아량을 베풀어 주는데 싫다고 할 수도 없지만, 내 표정은 이미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남편이 갑자기 나를 따라나서거나 태워주거나 하면 감사의 마음보다 울화가 왜 치미는 건지 한참을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나름이 계획이 있었다. 친구를 만나기 전에 그 근처 어디에서 무얼 사야겠다라든지, 모임이 끝나고 나면 시장을 한 바퀴 돌아야겠다든지 말이다. 남편은 모임장소에 태워주기도 하지만 끝날 시간이 되면 전화를 해서 언제 끝나는지 묻고는 기다렸다가 나를 태우고 집에 온다. 나만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다. 아마도 남들은 남편과 같이 가지 뭘 그런 걸 가지고 화를 내느냐 할 것이다. 나는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싶은데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가면 훌떡 마시고는 집에 가자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장을 구경하고 싶을 뿐인데 빨리 살 거 사고 집에 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가고 싶은 데 가라고 한다. 나는 내 뜻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남편은 모두 나에게 맞춰줬다는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싫다. 참 나도 치졸한 사람이다.


또, 언제부터 나에게 친절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이라도 나를 배려하려 노력하고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화를 내지 않고 웬만하면 나의 뜻을 따라주려 노력해 주는 모습이 말이다. 30년 결혼 생활의 결실이라고 말하고는 하지만 왜 이리 속박처럼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나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 갑자기 깊어졌을 리 없다.

그냥 늙어가는 중일까?

그렇다면 이제는 늙어질일만 남은 지금, 언제 변할지 모를 그의 친절에 익숙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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