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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Dec 12. 2022

후원을 한다는 건요

쉽지 않아요

퇴사를 한 지 넉 달이 지났다. 퇴직금은 이미 다 생활비로 써 버렸다. 그래서 고정지출금액을 엑셀로 정리해서 남편에게 보여줬다. 그냥 말로 해라 그러는데 그러면 느낌이 오지 않기도 하지만 사실 나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서 정리를 해봤다. 남편에게 생활비를 백만 원 더 받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결혼 초기에는 가계부 작성도 했었는데 매달 별 변동도 없고 허투루 돈을 쓰는 성격도 아니어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문득 막 이것저것 사고 싶을 때 가계부를 작성하지 않으므로 죄책감이 덜하다. 여하튼, 남편이 생활비를 보내주고, 내 월급을 합한 금액으로 한 달 한 달을 살았었고 아이들이 성장한 후로 부족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내가 백수가 되었으니 이제 슬슬 잔고가 바닥나고 있다. 


주머니가 얇아지면 더 줄일 수 있는 것이 없을까 찾게 된다. 나는 '생리대'를 후원하고 있다. 이것을 줄여야 할까? 잠시 생각했으나 그건 아닌 것 같아서 마음을 접는다.


엄마는 내가 6학년 때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상황에서도 배가 고프고 화장실도 가고 싶단 거였다. 나는 그 슬픔에 배도 안 고플 줄 알았다. 그리고 생리대가 급했다. 엄마가 남겨 놓은 생리대 한통이 다 써가고 있었다. 마지막 것을 사용하고는 많이 더럽혀진 것 같지 않아 다음에 또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장롱 안에 고이 보관을 했다. 작은엄마가 집안일을 도와주겠다고 와서 청소하다 생리대를 농안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화를 내시던지... 뭘 사달라 말하기가 세상 젤 어려웠던 나에게 작은엄마의 꾸중은 반가움이었다. 그것을 보고 새것을 사다 주겠구나... 했었다. 그렇지만 작은엄마는 그것이 나의 지저분한 성격쯤으로 생각했는지 생리대를 사다 주지는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셨어도 우리는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가야 했고, 밥을 먹어야 했고, 빨래를 빨아서 입어야 했다. 장녀인 나는 엄마처럼 일찍 일어나 연탄불에 밥을 하며 아침을 시작했다. 그것을 어떻게 다 하고 살았는지... 생리는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불규칙했고 어찌어찌 해결하기는 했지만 그때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몇 년 전 뉴스에서 생리대를 사지 못하는 여학생들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요즘 세상에 생리대를 구하지 못해 신발 밑창을 쓰거나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에 놀랬다. 작은엄마도 그랬을까? 당연히 생리대는 준비되어 있는 것으로. 당신이 준비해줘야 할 물건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걸까. 생리대를 후원하는 것은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급식 후원을 하는 것과 같다. 그 난감함. 절박함은 어디에 비교할 수 없다. 


통장에 돈이 없으면 일순위로 줄여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 후원금이다. 겨우 삼만 원, 오만 원인데도 그렇다. 그러지 말자. 아직 그 정도를 줄일 정도는 아니다.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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