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 자라라
어릴 적 학교에 가려고 길을 나서면 만나는 어른들마다 나에게 꼭 묻는 말이 있었다. 아침 반찬으로 무엇을 먹었느냐 였는데 하도 진지하게 물어봐서 빠듯한 등교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하나 곱씹어 손가락을 꼽아가며 말씀드렸던 기억이 있다. 늘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에게 물었던 나의 반찬 이야기를 듣고 다시 묻고는 했다. 콩나물은?
동네 아주머니들은 정말로 진지하게 나에게 콩나물을 얼마나 먹는지를 늘 물어보고는 했었는데 옛날 우리 동네 사람들은 키 크기 가장 좋은 음식은 콩나물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콩을 잘 씻어서 하루에 여러 번 물만 주어도 쑥쑥 자라서 며칠 만에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콩나물은 거의 매일 밥상에 올라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우리 집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밥상에 늘 올라오는 반찬이었을 것이다. 내 키가 큰 것은 콩나물을 먹었기 때문이 아닐 텐데, 왜 사람들은 나에게 자꾸 콩나물을 얼마나 먹는지를 늘 물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을 때, 아빠는 일 년 뒤에 학교를 보내는 것으로 결정했다. 내가 너무 조그맣기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혹시라도 키가 작은 나를 아이들이 괴롭힐까 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던 내가 쑥쑥 크기 시작하더니 3학년과 4학년 때에는 또래 중에 머리 하나만큼은 더 키가 컸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전교에서 가장 키가 큰 아이가 되었다. 별명은 늘 전봇대였다. 성격이 소심했던 나에게는 꽤 감당하기 힘든 별명이랄 수 있는 것이 나는 그저 길을 걸었을 뿐인데도 아이들은 내가 지나가면 꼭 공룡이 지나가고 있다는 듯이 으악으악 소리를 질렀고, 바닥에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나는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학교 다니기가 싫을 지경이었다. 걸스카우트 단체 사진을 보며 불쑥 솟아있는 나를 선생님으로 오해하는 일은 애교였다. 나보다 한 뼘 정도나 작은 남자아이들의 놀림은 6학년 2학기 때 나보다 더 키가 큰 여자아이가 전학을 오면서 끝이 났다.
언젠가 엄마는 내 머리를 빗겨주시며 ‘얼마 안 있으면 내가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되겠구나.’하고 말씀하셨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전교에서 가장 큰 아이로 등극을 했을 때 바로 밑에 남동생은 키가 크지 않았고, 막내 동생은 아주 작은 아이였다. 엄마보다 더 큰 우리를 상상할 수 없었던 나는 그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머릿속에 콕 박혀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졸업하는 것도 못 보시고 돌아가셔서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을 보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엄마는 아직 큰 사람으로 남아있다.
전봇대라는 별명을 가졌었다고 하면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웃는다. 그런 별명을 가질 정도의 키는 아니라는 거다. 딱 표준이라고 말한다. 그래도 작다고는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가족 중에서 가장 키가 작은 사람이 되어있는 나를 본다. 딸도 170Cm 가까운 키고, 아들은 딸보다 더 크다. 물론 이럴 줄 알았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냐는 소리를 듣고 전봇대라고 놀림은 받던 내가 우리 가족 중에서는 가장 귀여운 사람이 되어있는 거다. 엄마도 그랬을까. ‘젊음’이라는 자리를 자식들에게 내어주고 점점 작아질 자신을 상상하고 슬펐을까.
통통해 보이는 콩나물 한 봉지를 사다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콩나물 조림을 하다가 더 이상은 자랄 일이 없어 옆으로만 키를 키우고 있는 나를 본다. 전봇대라고 불리며 복도에서 아이들이 내가 지나갈 때마다 빵빵 옆으로 쓰러질 때 좀 더 뻐기면서 걸어볼 걸 그랬다. 앞으로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면 손가락으로 귀 뒤로 착 넘기며 그들과는 다른 족속인 것처럼 당당하게 걸으며 눈을 내리 깔고 바라볼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