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
언젠가 왼손을 바라보다가 참, 하는 일 없이 예쁨 받는 손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있다. 온갖 궂은일은 오른손이 다 하는데 반지 끼고, 팔찌 끼는 건 왼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잠깐 미워한 적이 있다. 그래서 반지를 오른손에 껴 보기도 하고 커피잔을 들 때는 일부러 왼손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운전할 때도 핸들을 두 손으로 잡기야 하지만 방향을 바꿀 때 힘이 들어가는 손은 오른손이고, 밥을 먹을 때도 글씨를 쓸 때도 왼손은 별로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니 아홉 시가가 되어 있었다. 스타킹을 휙 벗어 던지고 화장실에 들어가다가 휴지 걸이에 손이 슬쩍 스쳤는데 피가 뚝뚝 흘렀다. 왼손 새끼손가락 아래쪽부터 손목 있는 데까지 쭉 베었다. 피가 하얀 화장실 바닥에 끊임없이 떨어지는데 그 박살이 난 빨간 동그라미들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응급실에 가고 다섯 바늘을 꿰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물이 났다. 시간은 밤 열 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까만 스커트 아래로 알다리가 나와 있었다. 봄이 왔다고는 해도 3월의 밤공기는 차디찼다. 그리고 나와 함께 병원에 온 남편은 화가 나 있었다. 내가 다치면 그는 화가 나나 보다. 나는 언젠가부터 아프거나 힘들거나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이봐요, 나,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첫 아이를 낳으러 갈 때도 그랬다. 이봐요, 나, 아기 낳을 것 같아요. 남편은 커다란 덩치를 가진 남자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일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나는 절대로 흥분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런다고 열 바늘이나 꿰맨 손이 안 아프겠는가. 슬쩍 눈물을 닦았더니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아퍼? 하고 묻는다.
왼손이라서 다행이라고 모두 말한다. 내가 생각해도 다행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게 아니다. 단추를 잠그기도 어설프고 세수를 하기도 어설프다. 운전할 때도 그렇다. 차에 타는 건 괜찮지만 문을 닫는 것은 왼손이었다. 깜빡이를 켜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밥을 풀 때도 오른손으로 주걱을 잡고 밥을 퍼서 왼손에서 기다리고 있는 밥그릇에 밥을 담아야 하는데 왼손에 붕대를 친친 감고 있으니 빈 밥공기 들고 기다리기가 여간 수고스럽지 않다. 국을 뜰 때도 국자가 허공에서 헤맨다. 쨈 뚜껑을 열 때도 왼손이 꽉 잡아줘야 가능한 일이고, 우산을 펼 때도 왼손이 우산 손잡이를 꽉 잡아줘야 오른손으로 우산을 펼 수 있다. 왼손 없이는 오른손을 씻을 수조차 없다. 그런 왼손을 하는 일 없다고 이유 없이 무시했던 일이 미안스러워진다.
왼손은 그동안 서운했었나 보다. 내가 덜 쓰려고 애를 썼다 생각했는데 다치기 전처럼 왼손을 쓴다. 화장실에서 물을 내릴 때도 왼손이 먼저 꼭지를 누르고 있고, 손가방도 자꾸 왼손이 덥석덥석 잡는다. 책을 들고 길을 걸을 때도 뜬금없이 왼손이 무거운 책을 들고 있는 거다. 나, 그동안 이렇게 일했거든, 몰랐었지? 하고 말하듯이…… 그러다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시간은 흐르고 충분히 아물었다고 확신을 하신 의사 선생님께서 실밥을 두 개 뽑으셨는데 전혀 아물지 않았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세 바늘을 다시 꿰맸다. 그 후 똑같은 일이 한 번 더 일어나고는 왼손에 깁스를 했다. 왼손을 쓰지 않도록 극약처방을 하신 거다.
왼손이 아파지고 나서야 나는 내 주위를 둘러본다. 내 옆에서 항상 나를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나는 혹시 그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사람이기에 그 고마움을 잊고 산다. 내가 일을 잘했다면 팀원이 도와주어서 가능한 일이었고, 내 가족이 행복하다면 우리 모두의 노력이었다. 내가 오른손이어서 가능했던 일이 아니라 왼손이 나의 중심을 꽉 잡아 주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오른손잡이에게 왼손이란 별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왼손이 없다면 오른손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일이 어쩌면 하나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히터를 켜면 귀뚜라미 소리가 나는 내 차. 손잡이에 거칠게 올이 풀어진 내 손가방. 집에 들어가면 무조건 주워 입는 무릎 나온 바지까지.
그 모든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 귀한 나의 왼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