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평화를 빕니다

by 배추흰나비


1.

몇 년 전, 십년이 훌쩍 넘도록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늘 염원하던 피정을 떠났다. 아직 건강하지 못한 몸과 쉬는 것이 어색한 마음과 집에 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까지 잔뜩 짊어지고 기차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도착한 파주의 한 피정의 집. 파주까지 간 것은 피정 중에서도 침묵 피정을 찾아갔기 때문이다. 퇴사했으므로 어깨의 짐을 내려놓았다 생각했는데 피정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이미 걱정근심이 한 보따리다. ‘피정’은 -<가톨릭>에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성당이나 수도원 같은 곳에서 묵상이나 기도를 통하여 자신을 살피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속 시끄럽고 귀 따갑고 머리 복잡한 곳을 떠나 나만을 바라보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피정의 집에 도착하자 방을 배정한 수녀님은 나에게서 핸드폰을 가져갔다. 핸드폰 없는 삶. 피정의 시작이다. 일정을 함께할 사람들과의 인사를 끝으로 우리는 침묵했다.


2.

침대 매트리스를 뚫고 커다란 뱀들이 퍽퍽 고개를 디밀었다. 어른 허벅지만한 뱀들이 빨강, 노랑, 파랑의 색색의 비늘들을 번쩍이며 고개를 휘저었다. 너무 당황해서 그것들을 침대에서 뽑아내려고 덥석 목을 잡아 당겼다. 혀를 날름거리며 발버둥치는 그것들 중 겨우 하나만 목을 잘랐다. 그나마 목만 댕강 잘리고 몸통은 매트리스에 그냥 박혀 있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머지 뱀들은 고개를 휘저으며 매트리스를 탕탕 치고 있다. 번들거리는 뱀과 실랑이를 하다가 잠에서 깼다. 악몽이다. 낯선 곳 이어서였을까. 편안한 잠은 아니었다. 목도 깔깔하다. 혼자 있는 작은 방. 이곳에서 소리를 내는 건 탁상시계의 초침뿐이다. 꾸깃꾸깃한 마음을 다시 다잡으며 노트를 꺼내 버릇처럼 오늘 하루의 일정을 체크하며 급한 통화를 생각한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계획도 세운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전화기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사시간도 되지 않은 이른 새벽. 나는 왜 이 먼 곳에 왔나를 생각한다.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늘 피정을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대단한 핑계다. 나에게는 늘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단 며칠이라도 세상과 단절되고 싶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불안할까.


3.

생각해보면 나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 사람은 나이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기 싫어서 선택한 것이 자해라니. <자해>라는 말로 설명이 될까. 말은 칼이 되어 내 심장을 공격한다. 억울한 일도 태반이다. 그래도 참아 본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싸움에 젬병인 나는 그 복잡한 전쟁터에서 침묵을 선택했고, 그 침묵은 나를 공격해 잠 못 이루는 밤을 만들었다. 잠을 자지 못하고, 잠이 들면 악몽 속에서 나는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하다 가위에 눌린다. 상황에 대한 설명이 변명처럼 느껴져서 선택한 침묵은 나를 바보로 만들었다. 다른 사람과 싸우기보다 내가 상처받기로 한 나는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괴로워한다. 흉터는 나의 목을 누르고 내 가슴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차올라 나를 괴롭힌다. 숨을 쉬기 힘들다.


4.

주위를 둘러보니 여름내 파랗게 빛났을 매발톱꽃이 이제는 이파리만 자리를 지키고 있고 용담 꽃이며 맨드라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머위 잎이 다복하게 모여 있고 갯메꽃이 소담스레 담장을 지키고 있다. 꽃을 한가로이 들여다 본 적이 언제였는지 가물거린다. 꽃 이름을 알아가는 것을 행복으로 알던 때도 있었는데 참 바쁘게도 살았다. 마을 길을 걸으며 기도하는 시간. 그저 걷는다기보다, 기도한다기보다, 내가 나에게 ‘안녕’하고 말을 거는 것 같다. 살진 하얀 고양이가 내 눈치를 보며 슬슬 앞질러 걷는다. 그러다가는 후다닥 도망간다. 털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사랑을 담뿍 받고 있는 모양이다. 세상이 고요해지고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자 와락 들깨향이 덮친다. 들깻잎의 싱그러움과 어우러진 고소한 깨 향. 들깨는 누구를 기다리다 그렇게 까맣게 속이 탔을까. 까만 알맹이를 속속 숨기고 어둠에게 향기만 던져둔다. 나는 아릿한 그리움을 깊게 들이마신다.


5.


아픈 데는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없다”라고 말하는 순간

말과 말 사이의 삶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물소리가 사무치게 끼어들었다

<<눈사람 여관>>중, 이병률


어려보이는 수녀님은 나에게 상담 시간이 아니라 면담시간이니 하고 싶은 말을 하라고 했다. 복잡한 가정사를 이야기해야할지, 힘들었던 직장생활을 이야기해야할지 결정못하고 있는데 내 입에서는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말이 주춤거리며 나왔다.

“6학년 겨울에 아침에 일어났는데 엄마가 밥을 하고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마방에 갔는데 엄마가 누워 있는데 꼭 죽은 것 같았어요. 그런데 내가 엄마 손을 잡아서 전날 학교에서 배웠던 맥을 잡아보았어요. 그렇게 해보고 싶었어요. 손목을 한참을 더듬댔는데도 맥박이 안 뛰었어요. 그래서... 그게, 그 기억이 자꾸 나를 괴롭혀요.”

“왜요? 무엇 때문에 괴롭죠?”

“빨리 엄마를 흔들어 봤다던가, 어른들에게 달려가서 말하고 급히 병원으로 옮겼어야 할 시간에 내가 엄마 맥박을 잡고 있었다는 것이요. 그리고 그냥 울었어요. 누구에게도 뛰어가지 않고.”

“어렸잖아요. 그럼 뭘해요. 크레센시아씨는 최선을 다한거예요.”

수녀님과의 짧은 면담시간이 끝나고 나는 미사를 드리러 가지 못하고 내 방에 들어갔다. ‘그럼 뭘해요’라는 말.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고마웠다. 나의 껍데기에 씩씩함을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울고 싶은 만큼 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울음 끝에 툭. 코피가 터졌다.


6.

“평화를 빕니다.”

미사시간이면 나는 다른 사람이 주문을 걸어주듯 인사하는 평화를 챙기기 위해 성당에 갔었다. 그 힘으로 일주일을 살고, 일주일을 살고, 일주일을 살았다. 내 입으로 뱉던 평화는 평화가 아니었으므로 빚을 진 마음으로 살았다. 이제 마음이 홀가분하다. 내 동생들은 각자의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고 있고, 내 아이들도 나와 함께 성년이 되었다. 장녀로, 엄마로, 국장으로 버거웠던 때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말하는 것을 싫어했던 소심한 내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을 가지고 살기가 퍽 힘들었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 수 있을 것 같다. 변화하는 삶이 곧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행복하다. 며칠간의 침묵은 나에게 평화를 선물했다. 이제는 평화의 인사를 받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 피정의 집에서 마지막 미사를 하며 정말 마음을 다하여 평화의 인사를 나눈다.

“평화를 빕니다.”


#퇴사 #평화 #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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