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후엔 수영이지
몇 년 전 동생이 결혼하던 날, 결혼식을 끝낸 친척들을 모시고 우리 집에 가서 술 한 잔 하자며 내 차로 잡아끄는데 삼촌은 너 운전할 줄 아니? 하며 깜짝 놀랐다. 나름 늘 베스트 드라이버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던 나는
“왜? 나 운전 정말 잘해, 삼촌.”
하고 말했지만 끝내 삼촌은 내 차에 타지 않으셨다. 생각해보면 그럴만하다. 내 성격이야 애기 때부터 보아온 삼촌이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소심하고 겁 많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해서 어떨 때는 하루에 한마디도 하지 않아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딱 들러붙어 있던 내가 기계를 움직이는 운전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삼촌에게는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나이가 오십이 넘었더래도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운전학원에서 처음 운전을 하던 날, 나도 정말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운전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동을 켜고 기어를 바꾸고 액셀을 밟으니 차가 앞으로 나갔다. 정말 머리카락이 쭈뼛하며 헛웃음이 나왔었다. 운전하는 아내를 두어 대리운전비를 아껴보겠다는 남편의 끈질긴 부추김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한번 심어 놓은 이미지를 바꾸기란 참 쉽지 않다. 나 또한 한번 그러한 것은 영원히 그러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내가 잘 못할 것 같은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나에게 시도조차 되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 중에는 수영이 있다. 나에게 ‘수영’이라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일에 가깝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어릴 적 물가에서 놀다가 죽을 뻔 했던 일을 경험하고 나서는 목욕하는 것 이외에는 물속에 들어가서 놀아본 적도 없다. 그러다 오랜 직장생활로 몸이 시원찮아졌을 무렵 가족은 나에게 수영을 권했다. 내 자신이 돌보지 않은 내 몸을 위해 무언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수영은 아니었다.
“물에 떠 보세요.”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겨울 초입. 처음 수영을 배우러 간 날, 수영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물에 떠 보세요-라니. 물에 뜨는 방법을 알았다면 여기에 왔을까. 수영복조차 어색한 우리 초급반은 서로를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요즘 말로 동공에 지진이 난 듯 벌벌 떨며 강사를 바라봤다. 강사가 우리의 목숨을 빼앗으려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강사는 단호했다. 얼른 물에 뜨라고 했다. 물에 뜨는 것을 도와주는 킥판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이상한 일이 일어났는데 앞에 사람들이 차례차례 모두 물에 떴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잔뜩 겁을 먹고 있다가 옛다 모르겠다하며 물에 몸을 맡겼다. 거짓말처럼 나도, 물에, 떴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물론 아무리 팔을 젓고 다리를 저어도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내 몸뚱아리를 탓하는 날도 많았지만, ‘수영은 곧 죽음’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물에 떠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강사는 나만 보면 “어머니! 어머니! 아니, 어머니!” 하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이정도면 나에게는 일사천리의 진도다. 몸을 뒤집어서 수영을 하는 배영을 배우고는 너무나 행복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자유. 수영장 천정을 바라보며 몸을 물에 담그고 있는 순간 자유를 느꼈다. 귀까지 물에 잠기니 수영장을 쾅쾅 울리는 음악소리도, 여기저기 떠드는 소리도 모두 물속에 잠겼다. 가끔 수영선수가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일 때 힘든 일이 생기면 왜 물 위에 누워 있는지 이해가 되었다. 물에 뜨는 것은 욕심을 버렸을 때 가능했다. 모든 것을 놔 버렸을 때 비로소 물 위에 떴고, 버릴 것도, 가질 것도 없는 나는 행복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을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말한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조차도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 일인지 모르고 만든 말일 것이다. 세상에는 하고 싶은 일도 있지만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일 투성이다. 그런데 그 벽을 깨고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마음 쓸쓸한 날 음악을 크게 틀고 운전을 해서 도로를 달릴 줄 누가 알았겠나. 또 내가 답답하게 옥죄는 일들로 벗어나고 싶어서 수영가방을 메고 수영장을 갈지 누가 알았을까. 나조차도 짐작 못하던 일들로 나는 위로를 받는다. 산다는 건 그런 건가보다.
수영을 하다가 잠깐 멈춰서 창밖을 보노라면 성애 꽃이 곱게 핀 유리창 밖으로 하얗게 서리 내린 마른풀이 술렁거린다. 눈이라도 소복소복 내리는 날은 헐벗은 모습의 수영장 안과 더욱 비교가 되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피식 웃음이 난다. 운전도 수영도 도전하니 되었다. 나는 땅을 짚어서라도 헤엄을 치겠다는 마음을 가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라고 큰소리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