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바보같은?

내가 제일 못하는 것

by 배추흰나비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였을 때 혼자 집에 있는데 아랫집 살던 오빠가 불렀다. 아랫집으로 가니 동네 오빠들이 대여섯 명이 나를 빙 둘러섰다. 나이 차이가 커서 같이 논 적도 없는 오빠들에게 둘러싸여 쫄아 있는데 그 오빠가 내 팔을 잡더니 반쯤 비틀었다.

“아프냐?”

“쪼끔.”

더 비틀었다.

“지금은? 많이 아퍼?”

“어 많이 아퍼.”

흥미진진한 얼굴로 바라보는 오빠들 사이에서 내가 자지러지게 울어 댈 때까지 그 오빠는 내 팔을 비틀었고 마침 지나가던 외할아버지가 울음소리를 듣고 나를 구했다. 내 팔은 부러졌다. 팔이 부러질 때까지 놓아달라고도 못했던 것 같다. 무서워서 그냥 그렇게 있었다. 언제쯤부터 반항하고 거부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니가 나가서 노는데 동네 애들이 대문으로 들어서면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그런 날은 맨날 동네 애들이, ‘아줌마 큰일 났어요!’ 하니까.. 니 발로 나가서 니 발로 돌아오는 게 소원이었다.”

나는 여덟 살 때까지만 해도 아주 작은 아이였다. 성격이 다부지지 못했던 건지 나는 많이 다치거나 맞고 다녔다. 유치원에서 잡기장난을 치다가 의자에 거려 넘어져서 다리가 부러져서 오고, 아랫집 오빠가 비틀어서 팔이 부러져서 오고 숨바꼭질을 하고 놀다 계단 밑에 숨었는데 거기 튀어나온 못에 찔려 머리에 구멍이 나서 오고 그랬다. 엄마가 예쁜 머리핀을 사서 꽂아주면 하루도 못가서 없어졌다. 순둥순둥한게 무슨 죄인 듯 누가 내게 못된 짓을 해도 대거리도 못 하고 늘 맞고 다니니까 속이 상한 엄마가 나에게 누가 때리려고 하거든 신발이라도 벗어서 때리라고 한 적이 있다. 늘 착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던 우리 엄마가 누구를 때리라고 한적은 처음이었다. 우리가 살던 동네는 외갓집 성씨의 집성촌이어서 걸러 걸러 일가였다. 행동거지를 바르게 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시던 엄마가 엄청 속상하셨나 보다.


며칠 뒤에 길을 가는데 내가 엄청 무서워하는 친척 오빠가 내 동생을 괴롭히고 있었다. 내 동생을 괴롭히다니 나는 큰 용기를 내어 엄마의 가르침대로 고무신을 벗어 얼굴을 댑다 갈겼다. 오빠의 뺨에 빨갛게 고무신 자국이 났다. 괴롭힘 당한 동생과 뺨 맞은 오빠와 고무신 손에 든 내가 길가에서 엉엉 울던 장면이 영화처럼 떠오른다. 고작 열 살도 안 된 어린 것들.

언제부터 착하다는 말이 흉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배웠고 실천했는데 사람들은 나를 우습게 아는 것 같다. 디베이트처럼 나에게 의견을 피력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면 주장도 정확하게 하고 반박도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며 예를 들어 설명까지 다부지게 잘하는데 적절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가야 하는 싸움에는 영 소질이 없다. 대화를 하다가 혹은 회의를 하다가 상대방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의견을 수용할 만할 아량이 없는 사람에게는 말도 하지 않게 된다. 정말 본질과 전혀 상관이 없는 말로 대화가 산으로 간다 싶을 때 그 상황을 정리하고자 하는 말조차치고 제지당하기 일쑤라면 더욱 입을 다물게 된다. 내가 조금 더 일하면 되고, 내가 조금 더 손해 보면 되고, 내가 조금 더 힘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미련한 짓이었다. 그런다고 해서 그들이 알아주지 않았다. 알아달라고 참은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힘들이고 공들여 한 일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는 다반사가 마음 아프다.


나는 싸움을 지지리도 못한다. 시골 동네에서 아이들이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걸 본 적은 있어도 참여해 본 적은 없다. 애들이 말도 안 되는 일로 나를 괴롭히면 그냥 당했다. 나에게 친구들의 괴롭힘은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6학년 때 막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어른 말을 너무 잘 듣고 실천하는 나를 둘러싸고 나의 태도에 대해 비난했던 적이 있다. 억울한 일투성이였는데 욕을 할 줄 모르던 나에게 폭포수 욕을 쏟아 놓는 아이들 앞에서 당해낼 재간이 없던 나는 울고 말았다. 목적이 나의 울음이 아니었었든지, 아니면 안쓰러웠든지 아이들이 나를 데리고 산에 데리고 올라가서 교육을 시켰다. 싸우다 울면 지는 거다. 절대 울면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너도 소리를 질러라. 욕을 배워라. 뭐 이런 것들이다.

나는 싸우는 것이 싫다. 태생적으로 싸우는 것을 못 하기도 하지만 내가 폭발을 하면 나 스스로 감당이 안 될거라는 두려움도 있다. 사실 실제로도 그렇다. 그래서 부부싸움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부부싸움을 한다라는 것은 이혼을 하겠다는 거다. 하지만 나는 링에 오르고 싸움이 시작되면 끝장을 본다. 싸움은 이기려고 하는 것이지 간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결정할 때도 늘 신중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살펴보고 또 살펴본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결정한 일을 번복하는 일은 드물다. 늘 도덕적으로, 순리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착하고 성실한 나를 왜 사람들은 보릿자루로 보는 걸까. 어느 날 고무신짝 손에 들고 누군가의 뺨따귀를 후려갈겨 뉴스에 나올 날이 있을지 걱정이다. 나는 싸울 생각이 없는 잠자는 호랑이니까.


#가만히 둬 #싸우기 싫어 #나는 파이터#시작되면 끝을 보지#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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