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버린 흥부자 U
주차 기계에서 차를 빼고 있는데 관리 아저씨가 날씨가 추워지니 상갓집 갈 일이 자꾸 많아진다고 말을 건다. 내 주위에도 이번 겨울 들어 초상 난 집이 두어 집 있어서 맞장구를 치고 있자니 아저씨가 한숨을 내 쉬며 말씀하신다.
“내 나이 돼 봐, 자꾸 친구들이 죽어.”
마침 출차 된 차를 타고 나오기는 했지만 아저씨의 마지막 말이 코끝을 시리게 한다. 며칠 전에 싸이월드를 복원했을 때 일촌친구에 U가 있을 것을 보고부터 마음이 썰렁했는데 친구를 잃은 기억에 새삼 가슴 아프다.
U는 고등학교 때 짝꿍이다. 출근을 하려고 운전을 하는데 자꾸 앞차가 두 개로 보여서 눈에 이상이 있나 하고 병원에 갔더니 뇌종양이라고 했단다. 뇌종양은 드라마 여주인공이 걸리는 병인 줄 알았는데 U가 그런 큰 병에 걸렸다고 하니 위로할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U는 남편과 함께 여러 병원을 다니며 진료를 받았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U는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병가를 내고 쉬고 있는 U를 만났다. 조금 야위기는 했지만, 얼굴이 좋아 보였다. 나는 U가 고민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늘 방실방실 웃는다.
“수술해야 한다며, 얼른 날짜 잡고 해야지. 아직 애들도 어린데.”
“수술한다고 다 낫는 건 아니라더라. 나 열심히 기도해 볼 거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거야. 이번 일로 남편도 더 열심히 교회에 나간다고 약속 했어. 어쩌면 열심히 교회에 나가지 않아서 생긴 일일지도 몰라. 너도 나를 위해 기도해 줘.”
어찌나 강경한지 U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무엇이 수술을 거부하게 했을까. U는 웃으며 머리를 빡빡 깎고 싶지 않아서 라고 말했지만, 아마도 수술실에서 마지막을 보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으리라. 수술만 하면 다 낫는다는 말 보다 어려운 수술이고 그 후유증이나 수술중 사망할 수 있다는 서약서에 어떻게 사인을 할 수 있을까.
가끔씩 만나는 U는 습기를 잃어가는 마른 꽃 같았다. 가느다란 다리에 비해 상체가 비만이라며 늘 다이어트를 이야기하던 U는 이제야 날씬한 모습이 되었다며 점점 말라가는 몸에 하늘하늘한 선녀날개 같은 원피스를 입고 행복해 했다. 일찍부터 직장생활을 하느라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했다며 수채화 그리기, 드럼치기, 탁구 등 직장에 다닐 때보다도 더 바쁘게 살았다. 가끔 만날 때마다 기분 좋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다 나은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사람이 홍수가 나서 나무하나 겨우 붙들고 하느님께 계속 기도를 했단다.
“주님! 나를 구해주세요. 나를 구해주세요.”
사람을 가득 태운 배가 그 앞에 서며
“이보시오, 어서 타세요.” 라고 하니
“아닙니다. 저는 하느님께서 구해주실 겁니다.”
하며 그 배를 그냥 보냈단다. 그 사람은 다시 계속 기도를 했단다.
“하느님 저를 구해주세요!”
지나가던 배가 멈추어서 밧줄을 던져주며
“이보시오! 어서 타시오.”
하고 말했지만 그 사람은 그 배도 돌려보냈단다. 그러다 그 사람은 결국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다. 자신이 착실하게 살아왔고 신앙심도 깊었다고 믿었던 그 사람은 하느님께 화를 냈다.
“제가 그렇게 주님을 찾아 부르짖었는데 왜 저를 구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배를 두 번이나 보내지 않았느냐.”
가끔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하며 U에게 하늘에서 내려 보낼 동아줄을 기다리지 말라고, 하느님이 의사를 왜 만들었겠냐고, 다 그들을 통해서 일하시려는 것을 왜 모르냐고 설득하려 했지만, 끝내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러다 U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와 함께 U를 찾았다. 병원도 가지 않겠다고 해서 집에서 요양을 한다고 했다. 몇 달 사이에 U는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장작개비 같은 몸에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려서 의사를 표현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당황했다. 친구는 U를 먹이겠다고 죽을 쑤고 나는 옆에서 종알종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늘 즐거운 U를 나는 마음속으로 질투 했었나보다. 나는 사는 게 힘든데 U는 늘 행복해보였다. 회사일도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있으나 없으나 늘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U를 세모눈을 하고 쳐다봤다. 재산도 착실하게 불리고 애들도 늠름하게 키워내며 깔깔거리고 다니는 U를 질투했다고 고백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알아들었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늘 깔끔하게 화장을 하고 긴 머리를 곱게 드라이해서 끝부분을 동그랗게 말고 다니던 U가 아랫도리에 기저귀를 하고 오래 닦지 않은 이를 드러내며 남편이 어설프게 자른 머리모양을 하고 누워 있는 모습은 ‘속상하다’라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나는 U에게 요즘 바쁜 나의 일상을 하소연했다. 늘 퇴근이 한밤중이라며 며칠 전에는 몸살이 났고, 얼마 전에는 피부병이 도졌고, 지금도 두통약을 달고 살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러다 죽으면 회사에서 표창장이라도 줄라나 몰라.”
하고 말을 하는데 U가 나에게 말을 했다.
“그건 니 생각이고.”
눈동자만 굴리며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U는 나에게 또렷하게 말했다.
“그건 니 생각이고.”
식물인간상태가 된 U는 결국 병원으로 옮겨졌고 몇 번의 만남을 끝으로 끝내 떠나버렸다. 오랫동안 아프기는 했지만 끝내 죽을 줄은 몰랐다. 내 편협한 인간관계가 좀 더 편협해져야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아프고 힘들다. 감정표현이 서툰 나는 친구 장례식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했지만 하얀 국화꽃 사이에 활짝 웃고 있는 친구의 사진을 보자 그 자리에서 푹 엎어져 한참을 울었다. 친구 장례식에서 술을 먹을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짬뽕을 좋아하고 노래를 사랑하고 온 몸에 흥이 가득했던, 브라보를 입에 달고 살던 우리들의 밀크박스. 안녕. 아름다운 곳에서 행복하기를.
U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 한 토막.
영어시간에 별명을 말하는 시간이었다. U는 가슴이 유난히 커서 별명이 ‘유방’이었다. 선생님께서 U를 지목하셨다. 뭐라고 대답할지 우리들은 귀를 기울이며 킥킥거렸다.
“What's your nickname?"
U가 당당하게 일어나서 말했다.
“My nickname is milk box."
까르르 웃고 발을 구르던 우리 반 친구들. 그때 우리는 참 즐거웠었다.
우리들에게 웃음을 안겨 준 그 밀크박스가 완전히 속을 비우고 빈 박스가 되어 떠났다. 긴 슬픔을 안겨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