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여
엄마가 돌아가시고 불과 몇 달 만에 새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사람에게 적응해야 했다. 막내는 고작 국민학교 3학년이었으므로 새엄마를 곧잘 따랐다. 나는 원래대로 말이 없었고, 남동생은 고집을 피우곤 했다. 아직 우리는 모두 국민학생이었다. 새엄마는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든가, 뭐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김밥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가 백 줄의 김밥을 먹어야 했다.
우리 엄마는 동네에서 유명한 올곧은 분이셨다. 크는 동안 단 한 번도 막말을 들은 적이 없다. 집집마다 자식들을 부를 때 욕지거리가 붙어 다니고 부지깽이나 연탄 집개로 두둘겨 맞을 때 우리는 잘못한 일이 있으면 종아리를 맞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새엄마는 막내를 많이 때렸다고 한다.
대부분 뺨이었다.
우리 삼 남매는 매우 착한 아이들이어서 새엄마의 생일이 다가오자 고민을 했다. 좋은 선물을 해서 칭찬을 받고 싶었나 보다. 우리 엄마는 밭일을 하고 와서도 글을 쓰셨다. 성경을 읽고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다르기는 하지만, 엄마란 사람들은 비슷할 거라 생각하고 책방으로 갔다. 그리고 신중하게 책을 골랐다.
생일날 아침 수줍게 건넨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한쪽에 팽개쳐 저 단 한 줄도 읽히지 못한 비운의 책이 되었다. 꼭 그 책이 아니었대도 글자라고는 새엄마가 읽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새엄마는 IMF 때 집을 나갔다. 그러다 어느 날 집에 쳐들어와서 살림을 때려 부쉈다고 한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빠는 새엄마를 때렸고, 어쩐 일로 악다구니도 없이 매질을 감당하던 새엄마는 진단서를 떼 경찰에 신고를 했고 돈을 안 주면 아빠를 깜빵에 보내겠다고 협박했다. 합의금을 받은 새엄마는 깔끔하게 떠났다.
짜라투스트라가 도대체 뭔 말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새엄마에게 애정이 생기지 않은 나는 미안하게도 짜라투스트라가 이렇게든 저렇게든 어떤 말을 했을지에 대해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십여 년을 굴러다니던 책은 내게도 외면받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올 가을에는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 결심하다 그놈의 짜라투스트라가 생각났다. 읽어야 하지만 읽지 않은 책을 생각하면 제일 처음으로 꼭 그 책이 떠오른다. 왜 그 책을 꼭 읽어야 하는가. 명작이어서? 고전이어서?
꼭 읽어야 한다고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에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아직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궁금하지 않다. 위로가 되는 이야기든, 가슴을 후려치는 이야기든, 내가 걸어야 할 길을 제시하는 이야기든 아직 안 읽으련다. 환갑 즈음에는 도전할 마음이 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