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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Mar 10. 2023

왜 붙잡지 않는 거죠?

미련이 없나요


아들이 돌아왔다. 자신이 똑똑하기 때문에 생활비며 기타 지출이 없는 집으로 돌아왔단다. 반갑다.

새벽 5시에 밥을 먹고 출근을 하고 일을 하다가 학교에 가는 일상이다. 오늘은 직장 휴일인데도 다섯 시에 일어나서 아빠가 들고나갈 커피를 내린다.


아침 내내 캐논을 틀어 놓은 아들에게 직접 피아노를 쳐 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다. 어릴 때 피아노를 배웠으니 충분히 칠 수 있을 거다, 누나방에 캐논 악보가 있으니 도전해 보라고 꼬드겼다. 악보를 못 읽는다며 툴툴대면서도 누나방으로 가서 피아노 앞에 앉는다. 음표를 보고 건반을 누르는데 오- 화음이 맞는다.


아들이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을 일 년쯤 다닌 것 같다. 어느 날 피아노를 쳐보라고 했더니 '퐁당퐁당'을 쳤다.

도-레-미-미, 도-미 /여기까지는 4분 음표. 한 박자다. 솔라솔/이건 8분 음표인데 반박자로 못하고 한 박자로 쳤다. 피아노 학원을 1년을 다녔는데 돌을 천천히 던졌다.


퐁-당-퐁-당-돌-을-던-져-라


누나 몰래 돌을 던지려다 바로 검거될 판이다. 밤새 고민을 하다가 다음날 피아노학원에 전화를 했다. 4분이고 8분이고 음표이야기는 뺐다. 그냥 그만 다니겠다고만 했다. 아이의 박치에 창피하기도 하고 그것을 못 가르친 선생님에게 서운하기도 했다. 혹시 이야기가 길어지면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인생에 있어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은 풍요로운 을 살아가는 밑거름이 된다고 믿었던 나는 두 아이를 어려서부터 피아노학원에 보냈었다.


네, 어머니.


간단했다. 그러란다. 그만 다니란다. 나의 착각이었을까. 네, 어머니 속에 뭔지 모를 후련함이 묻어났다. 기본적으로 학원이나 과외나 혹은 직장을 그만둘 때도 이렇게 간단하지 않다. 몇 번의 면담과 회유를 거쳐야 처리되는 거 아닌가? 왜 내가 서운하지?


아들의 피아노 배우기는 그렇게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끝이 나 버렸다.


누나방에서 아들이 끙끙대며 캐논을 쳐보려 애쓰고 있다. 첫 줄은 그래도 칠만할 거다. 모두 2 분음표니까. 조금 더 진행이 돼서 4분 음표와 8분 음표가 나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껏 들었던 귀가 있으니 그럭저럭 해내리라 기대해 본다. 딸이 아닌 아들이 치는 캐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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