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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Mar 20. 2023

헝클어지고 엉킨 머리칼

속 시끄러운 일들

일어나자마자의 내 모습을 본 아들이 자다가 아빠랑 머리끄덩이 잡고 싸웠느냐 묻는다. 푸핫 웃음이 난다. 


어렸을 때 막냇동생이 일어나면 머리카락이 온통 엉켜 있었다. 그냥 하는 빗질은 중간에 걸려버려서 엄마가 머리카락에 물을 묻힌 다음에 살살살 빗어야만 풀렸다. 반곱슬에 머리카락이 얇아서 매일 아침이 전쟁통이었다. 동생은 아프다고, 엄마는 가만히 있으라고 서로 난리였다. 나는 실실 웃으며 구경했다. 나는 완전 참머리여서 머리를 빗지 않아도 참빗으로 싹싹 빗은 머리 같았다.


서른 조금 넘어서부터 새치가 나더니 마흔이 되기 전에 백발이 되었다. 원래 펌도 잘 안 먹는 쫙 떨어지던 참머리가 한 달에 한번 하는 염색에 지쳤나 보다. 어느 날 미용사가 나보고 '곱슬머리시네요.' 한다. 컷만 해도 펌을 한 것 같다. 나이를 먹자 나의 것이라고 믿고 있던 여러 가지 것들이 내 것이 아님을, 혹은 변해감을 느낀다. 식구 중에 나만 곱슬이 아니었는데 이제 최 씨 집안 고집쟁이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만 낮은 코도 예순이 되면 높아지려나.


근래 월세로 작은 아파트를 하나 얻어서 교습소를 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책상과 의자가 들어오고 칠판이 자리를 잡고 교재를 선정하고 컵과 물통과 발매트와 상담용 티세트와 명함. 그리고 현수막까지! 정신없지만 재밌고 행복한 하루하루였다. 집주인은 내가 저녁과 주말에 그 집에 머물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지역에 올 일이 있으면 하루 자고 가야지 뭐 이런 소리를 하길래 농담이겠거니 했지만 무언지 모를 불안감에 집 비번도 바꿨다. 토요일 밤에 집 비번을 바꿨냐며 연락이 왔다. 집에 무슨 서류를 두었는데 그걸 가져가야 한다고 난리여서 우선 비번을 알려주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분이 나쁘다며 전화해서는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고 이 계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뭐 이런


안 해도 된다. 교습소.

저자세일 필요가 없다. 내가.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라도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생각이 머리칼을 헝클어뜨리고 엉키게 해 버렸나. 아침에 일어나 무심코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데 손가락이 머리카락에 껴서 걸려버렸다. 

내가 밤새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웠다면 상대방은 그 집주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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