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상희 Apr 09. 2023

멀리서 바라보기

가끔은 멀리서

  고등학교 동창들과 봄나들이를 갔다. 충북 괴산의 산막이옛길. 정보없이 간 나는 그냥 산길이려니 했는데 깊은 산 속에 물길이 길게 있었다. 우리는 물길 따라 길을 걸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걷자니 온갖 꽃내음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숨을 길게 길게 들이마시며 걷는 기분. 오랜만의 코호강과 눈호강이다. 더 많이 걷고 싶었는데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일지감치 배에 올랐다. 배에서 바라본 산막이옛길은 몹시도-고. 왔. 다. 고왔다라니! 더 좋은 말, 더 느낌 있는 말을 하고 싶은데 다른 말이 생각이 안 난다! 

  오래된 나무들이 연두연두한 아기 잎사귀를 달고 아직 차가운 바람에 슬슬 몸을 흔들며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는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아쉬웠다. 저 길을 직접 걸었어야 했는데.... 나도 배에서 느끼는 이 바람이 아니라 저 산들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진달래 만발한 곳에 앉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봄기운을 담는 고즈넉한 시간을 갖었어야 했는데... 머리카락 온통 헝클어대는 배에 앉아 망연자실 바라보고만 있구나 싶어서 안타까움을 넘어 나중에는 화가 나려고 했다. 여덟이나 되는 우리들은 누구는 걷기가 좋고, 누구는 걷기가 힘들었다. 

나에게 누군가가 해인사를 가장 아름답게 보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해인사에 다녀와서 팔만대장경도 보고 경내를 돌며 보았던 것을 하나하나 늘어놓는 나를 보고서다. 어떻게 하면 해인사를 더 잘 볼 수 있느냐 했더니 해안사에 있는 앞산으로 올라가란다. 한눈에 해인사가 보이는데 그 모습이 몹시 아름답다고 했다. 


직접 걷지 못했다고 아쉬울 것이 없다. 바위 위에서는 그 바위가 신랑이 장원급제해서 머리에 어사화를 달고 말을 타고 오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다. 멀리서 봐야 보인다. 전체를 바라보는 시간. 그래, 나쁘지 않다.


그래도 수일 내에 혼자서라도 다시 가봐야겠다. 산막이옛길은 꼭 내 발로 차곡차곡 걷고 싶은 길이었다.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 이렇게 또 다른 소망을 가져다주는구나.

작가의 이전글 누룽지와 커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