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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May 05. 2023

캘리그라피 몇번에 추사를 떠올리다

만만한 것은 세상 어떤 것도 없다.

쉴 때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배워야겠다 생각했다. 수채화는 늘 배우고 싶은 영역. 문화센터를 알아보다가 이러저러한 일들 때문에 깜빡 시기를 놓쳤다. 그러다 도서관에 '캘리와 수채화'라는 8차시 특강이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신청했다. 뭐든 배우는 것은 좋은 거니까-하는 마음에서였다


어쩌면 캘리그라피를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붓글씨를 배웠고 고등학생때는 펜글씨 자격증도 땄더랬다. 글씨를 쓰는 것은 자신이 있었고 글씨를 약간 멋스럽게 쓰는것, 그런 것일 거라는 안일한 마음이 있었나보다.


써 보니 -오 마이 갓-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영-, 안 된다. 자꾸 붓글씨체를 쓰려고하고 펜글씨 쓰던 버릇이 나온다. 'ㄹ'을 흘려서 쓰는 것이, 내 글씨체를 버린다는 것이 이다지도 힘들줄은 몰랐다. 그날의 글씨를 연습하다가 수채화그림 하나를 배우고 나면 연습했던 글씨체를 까먹는다. 처음에는 글씨 알려주면 글씨 연습을 하고, 그림 알려주면 그림 연습을 하다가 엽서에 옮겼더니 영락없이 그냥 내 글씨체다. 나중에는 글씨연습을 하고 엽서에 글씨를 써 넣고 나서야 그림을 연습하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조금 나아졌다. 원래의 규칙을 깨고 새로운 규칙을 익히는 것은 몹시 힘들다.


8차시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이번주가 마지막 수업이었는데 캔버스에 글씨와 그림을 넣기로 했다.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글씨 연습을 했다. 그러다가 그림 연습을 했다. 잘 그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림 연습을 열심히 하고 캔버스에 그림까지 그려 넣었다. 그림을 먼저 넣으니 세상에, 글씨를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간을 끌면 끌수록 오히려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한번 더 연습을 해 볼 생각도 못하고 휘리릭 써 버렸다. 


망했다. 연습은 뭐하러 했나... 그냥 엉망이다. 내 글씨체와 배운 글씨체, 쓰고 싶은 글씨체가 뒤섞이고 처음 느껴본 캔버스의 질감까지 발목을 잡더니 원하지 않은 글씨가 나와 버렸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보고 정말 이상하게 썼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붓글씨라면 궁서체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자도 그것이 정상이지 싶었다. 아마도 추사의 글씨를 이해하기에는 내가 무식했었던것 같다. 모두 똑같은 글씨체를 고집하고 있을 때 새로운 혁명(그것이 혁명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을 일으킨 추사. 대단하다.

배움의 길이란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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