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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상희 May 10. 2023

우리 애기 사진 볼래요?

눈 돌리지 마세요

알고 지내던 유아원의 원장님이 급하게 나를 찾았다. 갑자기 영아반 선생님이 그만두게 되셨다며 시간 되면 며칠 도와달라고 했다. 시간이 문제라기보다 아기를 돌본 지가 너무 오래라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워낙 다급해 보여서 우선 가보기로 했다.


아직 두 돌도 되지 않은 아이는 처음에만 잠시 나를 멀리하더니 이내 괜찮아졌다. 나도 금세 익숙하게 아이를 돌봤다. 내가 첫 아이를 가졌을 때 걱정이 많았었다. 주위에는 나에게 아이를 키우는 법에 대해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거나 했던 때도 아니어서 '몬테소리 유아백과'책  한 권을 사들고 매일 들여다보았다. 아이에게 말을 많이 해주어야 머리도 좋아지고 어휘력도 좋아진다고 했다. 그것이 가장 걱정이었다. 나는 말하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사람인 데다가 대답도 하지 못하는 아기와의 대화라니, 앞길이 막막했다. 


아기를 가졌을 때는 좋아하지 않는 우유를 매일 마시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 아기를 낳고서는 쫑알쫑알 아기랑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힘들었다. 


유아원의 아기도 나처럼 말이 없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냥 놀기는 잘했다. 아직 말을 못 하는 나이라고는 해도 야속할 정도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먹이는데 내가 고기를 하나 집어서 '아-'라고 했더니 '커'라고 말했다. 어머나 깜짝야. 알겠어 조그맣게 잘라줄게. 요 녀석 필요치 않아서 말하지 않았구나. 그렇다면 나와의 언어교육 시작이다. 


이젠 수박씨를 보면 '빼',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전등을 보고 '켜', 내가 미우면 '가'라고 하며 한 음절로 된 단어를 말한다. 같이 그림책을 보면서 소, 닭, 말, 양등 내가 말하면 따라 하게 했더니 이제 제법이다. 나보고 읽으라고 하고 자기는 내가 말한 것을 가리키기만 하다가 네가 말해라 했더니 한숨을 폭 쉬고는 따라 한다. 할 줄 아는 녀석. 앵기-라고 해서 뭘까 생각해 보니 비행기였다. 맞아 아이들은 뒷음절을 발음해 낸다는 것도 기억이 났다.


조카들이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 남편을 보고 '부-'라고 해서 우리는 당연히 아이들이 '이모부'라고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발음이 조금 더 좋아졌을 때 '형부-!'라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자기 엄마가 그렇게 부르니 따라한 것이다. 어린 처제들이 생긴 남편은 몹시 즐거워했다. 


유아원에 다녀와서 파김치가 되어 있는 나를 보며 가지 마라, 그만 가라 하는 남편에게 다가가 매일같이 말한다. 

우리 애기 사진 좀 봐. 오늘 비눗방울 놀이를 했는데 이쁘지? 오늘 텃밭 가꾸기 했는데 이쁘지? 오늘 똥을 왕창 싸고 나서 기분 좋게 잤는데 이쁘지?


이러고 있다. 나는 나중에 안 그래야지... 했는데 관심도 없는 사람에게 전화기를 들이대며 우리 손주 이쁘죠? 하는 할머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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