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출근길

by 벼리

아침이면 나는 아이를 할머니집에 데려다 주고 출근한다. 오늘도 아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오늘따라 아이는 킥보드를 타고 가겠다며 떼를 썼다. 어젯밤, 늦게 퇴근하는 바람에 아파트 단지 밖에 세워둬서, 차로 가는 길이 멀어 안 된다고 하려 했다. 머릿속으로는 ‘시간이 없는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요즘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적었다.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 아이의 마음속에 작은 그리움의 산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됐다. 어제 아이가 “아빠 보고 싶어”라는 말을 백 번은 했고, “자고 일어나면 아빠 있을 거야”라는 아내의 말에 “자고 일어나면 아빠 올 거야?”를 또 백 번은 묻다 잠들었다는 아내의 이야기가 가슴을 찔렀다. 지각을 하면 어떤가. 결국 아이가 하자는 대로 다 받아주기로 했다.


내가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킥보드를 끌자 아이의 웃음소리가 맑게 터져 나왔다. “신난다!”하는 아이의 환호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보도블록 이음새를 지날 때마다 ‘덜컹, 덜컹’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아침 공기를 가르며 달려가니 화단의 풀도 바람에 살랑거렸다. 아이의 웃음, 킥보드 소리, 아침 공기의 청량함이 어우러져 내 감각을 깨웠다. 킥보드를 꽉 붙잡은 아이의 작은 손에서 온기가 전해져 왔다.


차를 타고 할머니집으로 가는 길. 아이는 차에만 타면 “파란나라 틀어줘”라고 동요를 틀어달라고 한다. 그 익숙한 요청에 오디오 버튼을 누르는 순간, 기대의 찬 눈빛이 백미러로 보였다. 가끔, 정말 아주 가끔씩 아이가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파란나라> 노래에 맞춰 작은 입술을 움직이며 따라 부르고 있었다. 어느새 이 노래의 가사를 제법 외워버린 모양이다.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세상에서 제일 신기하다. 말도 아직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아이들만의 순수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순간, 세상의 모든 행복이 바로 그 순간에 모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사 하나하나를 정확히 따라 부르진 못해도, 그 순수함이 담긴 목소리로 차 안은 작은 파란나라가 된다.


<파란나라> 다음에 나온 <나무의 노래>라는 곡. 이 곡은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아침햇살이 찾아들기 전 작은 소리로 노래하는 나무. 아침 햇살이 찾아들면 가슴을 펴고 햇살을 흔들며 노래하는 나무. 오늘은 날씨가 좋아요. 햇살이 눈부셔요.”라고 시작하는 노래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가로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가로수가 아침 햇살에 살랑거렸다. 나는 아이에게 “다온아, 날씨 좋다. 그치?”라고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는 그저 웃기만 했는데, 그 웃는 모습이 참 좋았다.


할머니집에 도착했다. 아이를 안고 할머니집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하는 아이와 나만의 비밀스런 작은 의식이 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늘 아이에게 마법의 주문을 속삭인다. “우리 다온이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멋진 아이야. 오늘도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뭐든지 도전해보자. 안 되는 건 없어. 아빠가 항상 다온이를 응원해.”


래퍼토리는 조금씩 바뀌기도 하지만, 늘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말을 들려준다. 아빠가 하는 말을 완전히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응”이라고 대답한다. 그 “응” 소리가 참 듣기 좋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에게 힘을 주고 싶어 시작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에게도 일종의 주문이 되었다. 나 역시 이 말을 하며 하루를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할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다시 차에 올랐다. 동요를 끄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틀었던 동요가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출근길에 아이와 항상 함께하다 보니 동요를 듣지 않으면 뭔가 빠진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냥 아이와 같이 듣던 동요를 이어서 듣는다.


신기한 것은, 학교로 가는 복잡한 도로 위에서 듣는 동요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동요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와 보낸 짧은 시간이 음악을 통해 계속 이어지는 듯하다. 출근길 차 안에서 혼자 흥얼거리는 동요가 내 하루의 시작을 더 밝게 만든다. 뭐랄까, 아침의 이런 루틴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고 해야 할까?


제자가 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당신의 습관이 되어야 해요. 매일의 루틴이 되어 어느날 문득 삶의 필연적인 불행함을 느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습관처럼 자연히 행복으로 스스로를 이끌 수 있게.”


그 말이 이제야 이해된다. 아이와 함께 손잡고 출근하는 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동요를 듣고, 아이에게 아침 주문을 속삭이는 이 소소한 의식들이 내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 시작하는 출근 루틴, 이 루틴이 나를 행복으로 다시 인도할 것이다.


학교 주차장에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역시 지각을 했다. 마지막 동요가 끝나고 시동을 껐다. 잠시 차 안에 머물며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어깨에 업무의 무게가 다시 실리는 순간이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가벼웠다. 아이와 함께한 아침 의식의 여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도 우리는 또 이 의식을 반복할 것이다. 그리고 모레도, 그 다음 날도. 그렇게 매일매일 작은 행복을 쌓아가는 우리의 일상이 계속될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게 바로 행복 아닐까? 어쩌면 행복이란, 이렇게 일상 속에서 찾아오는 작은 순간들의 합인지도 모른다. 아이와 나누는 평범한 아침, 그 소중한 시간들이 쌓여 내 인생을 빛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차 문을 열고 학교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오늘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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