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우리 집에서는 매일 밤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잠을 안자고 더 놀겠다는 아이와 빨리 육아 퇴근-두 돌 된 아이는 하루 10시간을 재워야 한댄다-을 하고 싶어하는 부모. 잠 자러 가자는 말에 “안 잘래. 자동차 놀이할래.”라며 눈빛은 오히려 더 반짝이고, 어깨에는 더욱 힘이 들어간다.
잠보다 놀이가 더 중요한 이 녀석에게는 아직도 장난감 기차를 달리게 할 궤도가 남아있고, 자동차들과 나눌 대화가 남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 아빠를 향한 필살의 작전이 남아있다.
아이의 작전은 책읽기다. 거실 불을 끄면 침대로 올라간다. 침대가 작전 무대가 된다. 한 권의 그림책이 끝나면 보란 듯이 두 번째 책을 꺼내온다. “이것도 읽을래.” 책을 더 읽겠다는 데 읽지 말라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 애교섞인 속삭임에 숨겨진 교묘한 작전을 알면서도, 아내와 나는 매번 넘어간다.
또다시 한 권, 두 권… 계속 읽어주다 아이는 책 속 세계보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등은 침대에 누웠지만 다리는 천장을 향해 뻗어 있고, 팔은 허공을 휘젓는다.
“이제 불 꺼도 되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싫어!”, “책 읽을래!” 외친다. 불을 꺼버리면 제 뜻대로 되지 않은 거에 서러워 울기 시작한다. “책 읽을래!”가 무한 반복이다. 고집은 정말 누굴 닮았는지. 어쩔 수 없이 아내는 어두운 방에서 그림책 내용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젯밤, 이야기가 바닥이 날 때까지 아이는 잠을 자지 않았고, 내가 아내 대신 이야기를 들려줬다. 잠을 안 자면 큰일난다는 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지금 생각해보면 엉터리 이야기인 <잠자기 싫어하는 아기 도깨비>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줬다.
“옛날 옛적에 잠자기 싫어하던 꼬마 아이가 있었어.”
지은 이야기는 이렇다. 잠자기 싫어하는 꼬마 아이, 잠을 안 자면 도깨비가 된다는 엄마의 경고, 끝까지 고집부리며 밤새 놀다 결국 머리에 뿔이나 도깨비가 된 아이. 엄마에게 보이지도 않고, 엄마를 만질 수도 없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아이.
아이에게는 엄마가 전부인데, 엄마에게 다가가지를 못한다니. 아이에게는 이야기가 끔찍한 상상이 되어버렸다. “도깨비… 싫어…” 훌쩍이기 시작하며 엄마 품에 안긴다.
아내는 웃음을 참으며 아이의 등을 토닥이는데, 나는 그 훌쩍거림에 당황을 했다. 잠을 안 자면 도깨비가 되어 버리는 이야기가 너무 무서웠던 걸까. 아이의 작은 어깨가 계속 흔들린다.
“미안해. 아빠가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줬지?”
눈물을 닦아주고, 안아주고, 차분히 속삭이며 이야기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바꿔나갔다. 반성을 하자 도깨비 뿔이 사라지고 꼬마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 잠을 자는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아이는 얼마 안 가 엄마 품에 안겨 잠들었다.
아이의 잠든 얼굴을 바라본다. 아까의 눈물 자국이 볼에 희미하게 남아있다. 문득 아이와의 자그마한 추억이 하나 내 마음에 새겨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아침, 아마 아이는 도깨비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날 있었던 일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단 생각을 했다. 책을 읽어달라고 떼를 쓰던 순간도, 도깨비 이야기에 겁먹던 순간도, 엄마 품에 안겨 잠들었던 순간도, 모두 금세 지나갈 것인 데, 나는 이 순간을 꼭 붙들고 싶다.
언젠가 아이가 내 일기장을 꺼내 읽어보았을 때, 이 밤을 이야기해 줄 날을 상상해본다. “너는 잠자기 싫어하는 아기 도깨비였어.” 아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남자 아이니깐 짧게 웃고 말지 모르겠지만, 아빠와 엄마만 간직하고 있는 기억을 들려주고 싶다.
이 여린 순간들이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머물길 바란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고 부모만 기억하는 시간, 그리고 이 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은 마음. 이 마음이 어쩌면 부모에게만 허락된 가장 소중한 부분이 아닐까. 서툰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 밤의 작은 기억은, 세월이 흘러도 내 마음 속에 별빛처럼 반짝일 것이다.
덧붙임. 돌이켜보니 아이에게 겁을 주는 도깨비 이야기를 들려준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잠을 재촉하기 위해 겁주기 보다는, 따뜻한 이불 속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포근함, 꿈나라로 떠나는 설렘을 느끼게 했어야 했다. 즐거움을 알려줬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