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기록집
“우리 딸은 전생에 나무꾼이었나 봐.”
나는 남편에게 지유가 씹어 놓은 연필을 보여줬다. 잘근잘근 씹은 것도 모자라 완전히 반으로 잘린 연필은 속살을 드러냈다. 연필 가운데 곧게 선 흑연의 등뼈는 마치 나무속을 파고드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과 내 시선은 연필꽂이로 향했다. 연필꽂이에 꽂힌 연필과 24색 색연필, 유성 네임펜은 지유의 이를 피하지 못하고 잇자국으로 난도질당해 있었다.
“큰일이야, 무슨 개도 아니고……”
남편에게 지유의 이갈이에 대해 하소연하다가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여보, 미안해. 아무래도 지유는 나를 닮은 것 같아.”
나는 난감함과 곤란함 사이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혹은 DNA의 굴레에 빠졌다고나 할까.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때 꽤나 충동적인 아이였다.
집 전화선을 가위로 자르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은, 그날 오후 집으로 걸려오던 단 한 통의 전화도 받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던 마음은, 새 학기 공책 20여 권을 모두 백설공주로 채운 뒤에야 끝이 났다.
인형을 만들고 싶던 날에는, 이불을 뜯어 솜뭉치를 반 정도 빼내야 잠이 왔다.
발가락 사이로 들어가는 솜의 간질이는 느낌은 묘하게 기분 좋았던 나의 유년 시절이었다.
만약 그 당시 우리 집이 땅과 가까웠다면, 자유낙하 실험으로 신문에 날 법한 철없는 아이였을 것이다.
수많은 충동 중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단연 연필이었다.
엄마에게 매를 맞고 벌을 서도 멈출 수 없었던 나만의 유희가, 30년 만에 딸에게서 그대로 발현된 것이다.
남편은 나에게 지유를 다그치지 말라고 말했다.
“크면 안 하겠지.”
그는 사람 좋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도 그게 일종의 카타르시스 아니었어? 그냥 내버려 둬.”
‘그래, 나도 태우지 못할 장작개비를 많이도 팼었는데…….’
선대 나무꾼의 업적을 기리는 마음으로 그 뜻을 따랐던 건 나였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내버려두라는 말에 홀가분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리고 지유를 위한 애정 어린 조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연필을 잘근잘근 씹으면, 나뭇조각과 벗겨진 페인트가 입안을 깔끄럽게 할 거야.
그러니 나무의 결을 잘 느껴가며 씹어야 해. 그래야 도끼질하듯 패지는 거야.
일본산 향나무 연필을 씹어 보면 너도 깜짝 놀랄 거야. 정말 맛이 좋거든.
‘네가 참 좋아할 텐데……. 차마 너에게 권할 수가 없네.’
나는 불현듯 연필을 씹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입맛을 다시며 지유와 함께 연필을 씹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역시 그것은 못할 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