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기록집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엄마요.”
1학년 4반 낯선 친구들이 엄마라는 말이 우스워 웃었다. 그때의 나는 차오르는 눈물과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꿈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해 여름 방학식 날, 나는 “적극적인 자세와 분명한 꿈이 아쉽습니다.”라고 적힌 1학기 생활통지표를 받았다. 쐐기를 박은 담임 선생님의 말에 엄마는 아쉬운 꿈이 되었다.
신학기를 맞이해서 자기소개의 배턴을 이어받은 딸아이가 첫 수업시간에 꿈에 대해 발표를 했다. 아이의 꿈은 항상 반짝이며 계속해서 태어난다. 꿈은 생명을 가진 것이 분명하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새로운 씨앗을 남기고 널리 퍼트린다. 현재 싹이 난 딸아이의 꿈은 유튜버이자, 카페 사장님이다. 또 얼마 전 잠수에 성공한 딸은 수영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딸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였어요?”
나는 어떤 근사한 꿈을 말해야 이 아이가 실망하지 않을지를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엄마의 꿈은 엄마였어.”
“진짜로요?”
“응, 엄마 초등학교 1학년 때 꿈이 ‘엄마’였어.”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엄마의 꿈을 이뤄줘서 고마워. 네가 태어나서 엄마는 꿈을 이룰 수 있었어. 네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이룰 수 없는 꿈이었어.”
대단한 업적을 세운 딸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어 보였다. 나의 대답이 딸에겐 우습지 않은 모양인 것 같아 정말 다행이었다.
오늘 같은 대답을 하기 위해 30년 전 나는 그런 꿈을 가졌던 것일까. 그다지 자랑스러운 꿈 소개는 아니었지만 나의 대답을 마음에 들어 하는 딸아이를 보니 그날의 기억도 이제는 나쁘지 않다.
‘너는 나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구나…….’
딸아이의 격려가 다시금 나를 피어나게 한다.
그때의 어른이 ‘내게 조금 더 친절한 대답을 해줬었더라면.’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랬다면 나의 꿈도 마음속에 너그럽게 씨를 뿌리지 않았을까 하고. 오늘 딸아이의 미소는 스스로를 달래 왔던 나를 위로하고 마음속에 다디단 봄비를 내리게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첫 수업에서 꼬여버린 꿈은 마흔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애써 꿈을 좇진 않는다.
엄마라는 꿈을 내뱉고 나 자신을 부끄러워했던 아이는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못난 꿈 콤플렉스’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탕발림의 꿈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한때는 내가 가지 않아도 될 길에 발자국을 찍었지만, 이제는 누군가에게 떠밀려 걸음을 재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꿈이라는 환상에 빠져 매일 부지런히 불안을 마주하는 일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꿈앓이는 여전하고 아직도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지만, 지금의 나는 꿈에게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를 묻거나 맡기지 않는다. 험한 길도 비탈길도 갈 수 있는 건 ‘꿈’이란 이름표가 아닌 ‘나’라는 것을 서툴게 배워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봄이 찾아왔다. 마음속 새순이 무성해지기를 바라며 마음 단장을 끝낸 나는 바람결을 헤아리며 봄맞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