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기록집
사실 처음에는 길몽이란 말에 복권을 사야 하나 싶었지만, 아직도 생생한 도엽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왠지 복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도엽이가 이런 나를 보면 “저 철부지는 그대로네.” 하며 또 얼마나 웃을까. 나 자신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났다.
삼 년 만에 나타난 이유가 뭘까, 나타나서 입은 왜 맞추고 간 걸까. 왜 그렇게 반가웠던 걸까. 이미 잠이 달아난 나는 쓸데없는 생각의 꼬리물기를 하다가 다시 고인이 된 사람들의 꿈 해몽에 대한 글을 찾아 읽었다. 그러다 우연히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에 대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불교 사상에서는 죽은 후 생전에 지은 죄에 따라 지옥에서 3년 동안 10번의 심판을 거쳐 육도윤회의 길을 나선다고 한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 나올 법한 ‘지옥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 이유는 ‘삼 년’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나는 사실 미안하게도 도엽이가 죽은 후 그가 좋은 곳에 갔을 거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미로와 같은 길을 떠돌거나 지옥에 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를 반겨줄 하늘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벌을 받는다면 제발 아주 조금만 받을 수 있기를 바라 왔다.
그런 그가 삼 년 만에 나타났으니, 이제는 정말 그가 죗값을 다 받고 편해진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한편으론 ‘내가 뭐라고 심판관이 되어 너의 양형 이유와 형량과 만기출소에 기뻐하고 있는 건지.’ 실속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화가 아니기에.
삶을 모독했던 네가 10번의 마지막 심판을 거쳐 내게 온 것은 아닐까 하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어찌 됐든 너의 깜짝 등장은 내게 마지막임을 말해주는 것 같아 계속 모호한 기분에 휩싸였다.
아무 말 없이 너를 껴안고 입을 맞추며 위로할 수 있던 꿈이 이제 더 이상 신비롭지 않다. 너의 마지막을 찾아가지 않은 투정을 대신한 인사가 고맙고, 그래서 더욱 그립다.
검은 뿔테에 감춰진 너의 눈웃음이, 너의 몸에 비해 컸던 두 손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너의 음성이, 그 걸음걸이가.
애도하는 방법은 모르겠고, 먼 훗날 너를 만나면 농담이나 하고 싶다.
딸 둘을 낳은 유부녀에게 감히 입을 맞추냐며! 그래도 그런 일탈이 나쁘진 않았다고. 그리고 너의 흔한 죽음에 따스함이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