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기록집
내가 두 팔을 활짝 펼치자 너는 내게 달려왔다. 와락 끌어안은 나에게 너는 두 무릎을 꿇고 난데없이 입을 맞췄다. 그런 네가 반갑고 좋아서 밀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너무 놀란 탓에 꿈에서 깨고 말았다.
휴대폰을 보니 새벽 4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동창생이랑 이게 뭐람.’ 꿈에서 깬 나는 옆에 자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딸을 떠올렸다. 주책이다. 낯부끄러워서 누구에게 말도 못 하겠다. 친구들에게 말하면 분명 “너 욕구불만 있니?”라면서 놀림감이 될 게 뻔했다. 혼자서 머쓱하게 웃다가 마음속에서 쿵 하고 납덩이가 떨어졌다. 너무 놀란 나머지 가슴 뛰는 소리가 들렸다.
꿈속에서 본 그는 3년 전에 죽은 김도엽이었다.
2021년 1월, 승희는 첫 아이를 낳았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속의 아기는 속싸개에 감싸인 채 잠을 자고 있다. 빨간색 털모자를 쓴 아이의 머리맡에는 이름표가 걸려 있다. 성명 이승희 산모 아기, 성별 여아, 체중 2865g, 출생일시 2021.01.07 (17:32), 39주 0일. 프로필 사진은 승희가 이제 엄마가 되었음을, 동시에 건강한 딸이 태어났음을 세상에 알렸다.
이제 막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먼저 축하 메시지를 보내 놓고, 통화는 미뤄뒀다. 사랑하는 친구의 행복한 날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할 말이 많았지만 승희를 위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몸조리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한데, 다음 날 승희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승희의 울음소리가 축하의 말을 준비하던 나의 입을 막았다. 울먹이며 승희가 말했다.
“장미야, 도엽이가 죽었대.”
도엽이가 죽었다는 말은 농담처럼 들렸으나, 승희의 울음소리가 거짓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도엽이는 나와 같은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이다. 그리 친한 사이도, 그렇다고 안 친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는 차로 왕복 8시간이 넘는 내 결혼식장에 온 몇 안 되는 남자 사람 친구이기도 했다. 우리는 특별한 유대는 없었지만, 함께 어울리는 친구가 같았고 사는 곳도 가까웠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가볍게 술 마실 수 있는 편한 사이였다.
서로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았지만, 도엽이는 연락을 하면 한달음에 나와 주는 친구였다. 그는 늘 바빴지만 거절하는 법을 몰랐던, 누구에게도 가장 무해했던 특별한 친구였다.
그런 그가 얼마간의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시달리다 죽었다.
주변인들의 말로는 일주일 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자 친구들이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경찰관과 소방관과 함께 혼자 사는 도엽이의 집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가 숨진 도엽이를 발견했다. 서른셋, 도엽이의 자살은 성공으로 끝났다.
그가 삶의 동기와 씨름하고 있을 때, 승희는 싸우고 있었다. 사는 힘이 없었던 도엽이는 죽었고, 죽을힘을 다했던 승희는 딸을 낳았다. 도엽이가 그런 시도와 선택을 하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생애 가장 큰 행복을 느꼈던 승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았을 때보다도, 그녀의 아이보다도 더 많이 울었다. 서로 다른 안간힘을 쓴 사실이 승희를 못 견디게 했다. 승희는 숨 가쁘게 울며 알 수 없는 자책을 했지만,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도엽이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보다, 딸을 낳은 지 얼마 안 된 승희가 더 안타깝게 느껴졌다. 승희는 한동안 멍든 채로 살아갈 것이다. 딸을 바라보며 문득 그날의 도엽이를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유사한 죽음이 여러 번 있었다. 죽음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도 없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계속해서 죽음의 까닭을 찾곤 했다. 하지만 죽음의 답은 내게 없었고, 감히 평가할 수도 없었다.
도엽이의 죽음은 내게 그런 죽음이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 울음이 나지 않는, 체한 것처럼 답답한, 감정이 꽉 찬 죽음.
결혼 후 타지 생활을 하게 된 나는 어울리던 남자 친구들과의 가지가 잘렸다. 덕분에 내게 부고장은 전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친한 친구에게 먼저 도엽이의 죽음을 알리고 조의금을 부탁했다. 아이를 방패 삼고 거리를 핑계 삼아 초대받지 못한 도엽이의 장례식엔 가지 않았다.
내가 만약 그때 도엽이의 장례식에 갔었더라면, 그의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그건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세리머니를 보지 못한 아쉬움과 다행스러움 사이에서 나는 종종 도엽이를 생각했다.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도엽이가 한참 떠 있었다. 마치 연락을 하면 바로 답장이 올 것 같은, 먼저 말을 걸어올 것 같은 도엽이가 그곳에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너 때문에 집값이 떨어졌어.”라며 죽음을 희롱해도 웃어넘길 바보 같은 놈이, 갑자기 3년 만에 왜 내 꿈에 나타난 것일까?
해몽을 하고 싶던 나는 ‘죽은 사람이 나오는 꿈’에 대해 검색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꾼 꿈은 대부분 ‘길몽’이라고 했다. 길몽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걸, 도엽이를 만난 날 처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