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기록집
우연히 “가시를 거두세요.”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나와 남을 찌르고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했다. “잠시 가시를 거두어도 당신은 안전하다”는 책 소개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불량한 마음이 딴지를 걸었다.
한때 나는 거리 두는 것에 실패했다. 지나쳐서 버거웠고, 물러나서 소원해졌던 때가 있었다. 실패로 인해 내 몸에 생채기를 내며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에겐 가시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시를 거두라니”, 반항심이 솟고 성질이 났다. 화가 난 김에 글을 쓰려고 공책을 펴 들었다. 분노를 배후에 두고, 공책이라는 싸움터에서 화풀이를 해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너는 겁 없이 다가와 내게 소리쳤다. 너와 나의 마음이 같지 않음을 탓했다. 그래서 가시를 키웠다. 가시의 고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한두 줄 쓰다가 ‘가시’에 대해 검색해보니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의 ‘고슴도치 딜레마’ 글이 있었다. 스무 살 초반, 친구와 나누던 가시 이야기가 “쇼펜하우어에게는 비빌 수 없겠구나” 싶었다. 배움이 부족하다는 것은 때론 기쁜 일이다. 나의 용감함을 볼 수 있으니까.
나는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른 가시가 있다고 생각했다. 길이도, 강도도, 날카로움도 모두 다른 가시가 태어날 때부터 솟아나, 우리를 둘러싼 모든 우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돋아났다고. 꽃을 피우기 전에 가시가 돋은 줄기를 먼저 뻗는 장미처럼.
가끔 가시를 끌어당겨 상처를 입는 이의 외침이 아찔하게 들려온다. 그럴 땐 달래며 말한다.
“우리 모두에겐 가시가 있어.”
“그러니 성급하게 미워하지 마.”
“자꾸 끌어당기지 마.”
“도망가려 하지 마.”
“가시를 뽑으려 하지 마.”
“가시를 너무 키우려 하지 마.”
“애써 가시를 숨기려 하지 마.”
“단지 조금만 기다리면 너에게 닿기 위한 적당한 거리에 서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나는 가끔 상상해 본다. 나의 가시는 어떻게 생겼을까? 무딜까, 날카로울까? 길이는 길까, 많을까? 어떤 가시이길 바라는 걸까?
고슴도치는 서로 머리를 맞대며 잠들고, 선인장은 꽃을 피운다.
그래, 가시가 중요한 건 아닐 테지.
가시를 모르는 이는 상처를 곪게 하고, 아는 이는 거리를 둔다.
그래, 중요한 건 가시가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