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주는 사람
아이들은 나에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무척 좋아한다.
어린 아이나 큰 아이들이나 다 그렇다.
어제 같은 일을 하는 사교육 샘들이랑 스승의 날을 자축하는 점심식사를 하면서
여러 힘든 여건 속에서도 우리가 여태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뭘까 대화를 나눴다.
한 공부방 샘은 뛰어난 성과를 만드는 자신의 탁월한 능력을 말했고 누구는 엄마들과의 소통과 상담력을 꼽기도 했다.
나에게는 뭐가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봤다.
나는 오로지 아이들이다.
결과가 잘 나오는 뛰어난 아이들보다는 느리고 잘 못하는 아이들이지만, 나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들의 팬심(?)으로 여태 사교육으로 밥먹고 산다.
아이들에게 고마운 스승의 날 밤이다.
어제 군대 갔다가 제대하고 복학한 옛 제자가 불쑥 찾아왔다.
초등 5학년때부터 고3 1학기까지 나랑 공부를 했다. 정말 말을 안 듣는 초등학생이어서 참 애를 먹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더 좋은 학원 더 뛰어난 선생님을 찾아서 떠날 동안 끝까지 있었던 녀석이다. 군대 갈 때도 오더니 제대하고 또 찾아온다. 와서는 별 말도 없다. 나 혼자 실없는 소리를 하고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하고 갔다.
이제 복학생이구나~ 어른이네^^
내가 하는 일은 “말을 하는”일인데, 아이들은 내게 자기 이야기를 무척 하고 싶어 한다.
다른 아이들이 다 가고 퇴근 시간이 다 되었을 때 꼭 한 명씩 남아서 별 일도 아닌 이야기들을 나한테 한다. (나는 대체로 건성건성으로 듣는다. 빨리 퇴근해야 하는 데 오늘은 왜 이 녀석이 안 가고 붙잡는지 모르겠네.. 그런데 내 그런 속마음이 아이들한테 안 들켰는지 아이들은 계속 이야기를 한다)
잘 듣는 사람?이었던 건가 내가?
언제쯤 은퇴해야 할까 늘 걱정하는 이제 와서 내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가?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아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아이들 옆에 있으면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잘 내는 선생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중고등 시절을 무던히 옆에서 지켜봐 주는 어른,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어른이기는 했던 것 같아.
스스로 자축하는 스승의 날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