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일기 08

결국 부추가 아니었다

by 연분홍

1.

이맘때는 봄비가 자주 내려야 하는데,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주말에 꼭 해야 하는 일 가운데 밭에 물 주러 가는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같이 텃밭을 하고 있는 친구는 지난주에 밭을 만들고 모종을 심으면서 호미질을 너무 많이 했는지 오른 손목에 무리가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역시 자연농법을 따라야 한다. 안 그러면서 고생이다ㅋ)


오늘은 출근하기 전에 밭에 들렀다가 물을 주고 왔다. 3호 텃밭에 새로 심은 모종들 가운데 고추와 가지는 모두 살아남지 못했다. 텃밭 2호에 있던 가지를 새 밭으로 옮겼는데 아직 뿌리를 완전히 내리지 못한 것 같아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처음 주말 농장 텃밭을 시작할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텃발일기를 8회 차까지 쓰게 될 줄 몰랐다^^) 상추는 어디든 심어 놓으면 잘 자라니까 모종만 심어두면 잘 따다 먹겠지 싶었다. 예상대로 상추와 적겨자잎은 잘 먹고 있다. 하지만 갈 때마다 잡초도 뽑아줘야 하고 요즘처럼 가뭄이 심할 때는 물 주는 것도 신경 써야 한다. 거기다가 밭을 조금씩 늘이다 보니 뒤늦게 심은 새 밭의 모종들은 제대로 자리도 못 잡아서 마음을 쓰게 한다.

텃밭은 멀지 않지만 꽤 가파른 길을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가야 한다. 맞다. 주말 아침 등산 가는 마음으로 가고 있다. 물론 이런 신경쓰임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마치 애완견을 키우는 사람의 심정 같은 건가? 싶게 어쨌든 계속 텃밭 생각을 하게 한다. 상토와 배양토, 거름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시작한 텃밭. 계속되는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을 겪으면서 결국 집안 책꽂이 어딘가에 있을 “주말농장 텃밭가이드북” 두꺼운 책을 찾아냈다. 오래전에 사둔 책인데 다시 펼쳐봐야겠다.


2. 결국 부추가 아니었다

텃밭 1호 초반에 부추 씨앗을 뿌린 적이 있다. 3월 말 아니면 4월 초였을 것이다. 다이소에서 파는 냉이, 부추, 바질, 방울토마토 씨앗을 심었다. 제대로 구역도 안 나누고 심었는데 냉이는 싹이 나자마자 꽃대가 올라왔고 이웃 텃밭 어른이 지천에 냉이가 있는데 냉이 씨앗은 왜 심느냐고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바질은 씨 뿌리고 한참 지나 드디어 싹이 올라왔고 이제 텃밭 3호로 옮겨 심었는데 여전히 잘 자라지 않는다. 방울토마토 역시 바질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제 남은 건 부추다.

부추 씨앗을 심었으니 이제나저제나 부추가 올라오기를 기다려 부추 같이 생긴 길쭉한 잎들이 나오기는 했다. 그런데 워낙 느리게 올라오고 다른 싹들과 뒤엉켜서 어느 게 부추이고 어떤 게 잡초(?)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부추씨 심은 땅에 부추가 올라오겠지 싶어서 비슷한 싹 몇을 잘 키웠다. 그리고 어느덧 제법 자랐을 때 사진을 찍어 “텃밭 가꾸기”인터넷 카페에 질문을 올렸다.

부추가 맞을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사진을 본 대부분의 텃밭고수들이 “풀”이라고 대답했다.

부추는 잎줄기가 없이 바로 땅에서 올라오는데 내가 올린 사진을 자세히 보면 잎줄기가 보인다는 것이다. 아 ㅠ ㅠ

그리고 구별하는 다른 방법으로 잎을 뜯어 비벼서 부추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라는 것이 있었다. 오늘 아침 밭에 갔다가 잎을 잘라서 냄새를 맡으니 아무래도 부추 냄새가 나지 않았다.

결국 부추가 아니었다.

그럼 부추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처음 싹이 올라왔을 때 내가 뽑아버린 것들이 부추였던 건 아닐까? 싶었다. 왜 하필이면 부추씨앗을 심은 곳에 부추와 꼭 닮은 피(?)가 자라기 시작한 걸까? 모든 게 궁금하다.

요즘 책을 잘 사지도 않고 잘 읽지도 않는데, 오랜만에 맘먹고 산 책이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다 못 읽고 책을 주문한 것이다.

“식물학수업”이다. 책의 부제는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는 잡초의 전략”이다.

어떤 잡초- 괭이밥은 뽑으면 뽑을수록 씨앗이 퍼지는 마법에 걸린 것 같은 식물이라고 했다.

결국 부추가 아니었지만, 나는 부추를 닮은 잡초를 부추보다 더 자세히 사진도 찍고 관찰했다. 농작물을 키우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잡초 같은 인생이라 그런가 풀에 대한 애정이 더 커졌다.

텃밭일기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