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을 하는 이유
텃밭일기 09
텃밭을 하는 이유
지하철 역 앞 장터에 가면 오이는 3개 1천 원이고, 청양고추는 한 봉지 가득 1천 원이다. 아직 가지는 3개 2천 원이지만 날씨가 더워지면 곧 가지 가격은 내려갈 것이다.
텃밭 농사를 잘 지으면, 싱싱하고 깨끗한 내가 직접 농사지은 것들을 먹을 수 있지만 시장에서 사 먹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경제성이 있는 건 아니다. 더 신경을 많이 쓰기에는 나는 아직 젊고 해야 할 일이 많다.
뭐든 시작하면 제대로 해야지,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그 일을 오랫동안 계속 못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그냥 되는 대로 할 생각이다.
내가 완전 초보 텃밭러인 것 같지만, 가만히 주말농장을 했던 경험을 따져보니 올해가 4번 째다. 이웃 텃밭 어른이 3년째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 나는 햇수로 치면 띄엄띄엄해서 그렇지 4년 차다.
아이가 네 살쯤 되었을 때였나 고속도로 톨게이트 옆에 농협주말농장을 분양받아서 해 본 적이 있다. 그때 기억에 남는 건 장마철이 되니 어찌나 밭작물들이 다 잘 자라는지, 고추는 갈 때마다 한 바구니씩 땄다. 장마철에 해가 안 나서 안 자라면 어쩌나 했는데 정말 잘 자랐다. (같이 텃밭 하는 친구가 텃밭 이웃이 알려준 바에 따르면 고추는 물은 자주 주면 안 된다고 했다는데, 내 기억 속의 고추는 장마철에도 아주 잘 컸다) 그때 그 고추로 엄청난 양의 고추장아찌를 담근 기억도 난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고 아이가 고등학교 다닐 때 즈음 2년 연속으로 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분양한 주말농장을 했다. 아욱을 심었는데 아욱은 정말 말도 못 하게 잘 자라서 나중에는 아욱 나무(?)를 뽑느라 힘들었다. 열무를 심었는데 진짜 열무잎은 하나도 남김없이 벌레가 다 먹어버렸다. 시장에 가면 얼마나 깨끗한 열무를 파는지 생각하면 열무는 약을 치지 않고 재배가 불가능한 작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콩도 심었는데, 콩은 꽃이 피자 마자였는지 열매가 열리자 마자였는지 새들이 죄다 와서 먹어버렸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텃밭을 하면서 콩은 안 심기로 했다. 콩잎을 먹을 게 아니라면.
나는 텃밭에서 오고 가는 이웃 텃밭 어르신들이 이런저런 조언이나 참견을 해 주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궁금한 게 있으면 열심히 인터넷 텃밭 가꾸기 카페에 물어보긴 한다)
제대로 키우려면 약도 쳐야 한다고 하고 비료도 더 줘야 한다고 하고 물도 어떤 작물은 몇 번을 줘야 한다고도 하고....
나는 그냥 내 마음대로 키우고 싶다.
내가 암만 잘 키워봐야 전업농이 최고의 생산성을 내면서 키우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고, 그러려면 그냥 사다 먹는 게 낫다. 화훼시장에 가서 품종도 잘 모르는 고구마를 심어봤자 시장에 나오는 고급품종 고구마의 맛에 비할 바도 아닐 테고.. 그래서 고구마도 안 심었음.
그냥 자연 그대로 자라는 걸 아주 조금만 거들면서 보고 싶은 것뿐이다.
쑥갓은 꽃이 이쁘다. 왜 꽃대 다 올라온 쑥갓을 그대로 놔두냐는 질문에 “쑥갓 꽃이 이뻐서요”라고 대답한다. 쑥갓은 꽃 피는 거 보려고 키운다.
잘 가꾸어진 정원을 보면서 아름답다 느끼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나는 혼자 크는 잡초에서 피는 꽃들이 더 좋다. 내 텃밭은 최소한의 손길만으로 가꿀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