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을 향해 가는 계단에서

북인도 라다크 '레' 여행-10 - 샨티 스투파를 올라서

by 윤성민

'레'를 떠나기 하루 전이었습니다.

'레'의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바위산 언덕 꼭대기의 '샨티 스투파'를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왕이면 석양을 보고 싶어서 일몰시간 즈음해서 '샨티 스투파'에 오르기로 하였습니다.


숙소에서부터 걸어가는데 가다가 길을 헤매는 바람에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샨티 스투파'가 있는 바위산 입구에 도착해서 하늘을 보니 정상에 오르기 전에 해가 질 것 같았습니다.

'레'의 하늘은 점점 황금빛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관광객들은 해가 지는 풍경을 충분히 즐긴 듯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해가 질까봐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상을 향해 마구 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마구 뛴 것은 제 발이 아니라 심장이었습니다.

'아 여기 고산 지대지...'

스무 계단도 못 올라서 헉헉 거리는 저를 보며 여유롭게 내려오는 외국 관광객들이 파이팅하라고 응원해주었습니다.

'아 더 빨리 올걸...'

정상은 정말 바로 위에 보이는데 빨리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니...

제 심장의 요동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데 야속하게 해는 기다려주지 않고 산 뒤로 저물어가기만 했습니다.

반 조금 넘게 올라왔을 때 제가 올라가는 속도가 해가 지는 속도에 비해 한참 느리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저기 정상에 올라갔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난 뒤겠구나...'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숨을 고른 뒤 바위산 중간에서라도 해 질 무렵 '레'의 풍경을 감상하자는 마음으로 주변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제가 선 바위산 건너편에 '레 성'이 보였는데 그 위로 보름달이 떠있었습니다.

보름달이 떠있는 반대편에서는 해가 계속 저물고 있었습니다.

저물어 가는 해로 인해서 '레 성'이 있는 산은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그 위에 떠있는 보름달 빛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작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안셀 아담스 사진전에서 감탄하면서 본 그의 대표작 '달과 하프돔'사진이 기억났습니다. '달과 하프돔' 사진은 안셀 아담스가 요세미티에서 석양의 빛이 비친 하프돔과 그 위로 떠오른 달을 찍은 사진인데 태양은 사진에 담겨있지 않아서 마치 달빛으로 하프돔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사진이었습니다.


저도 '레 성' 위에 떠있는 달과 그 아래 석양의 빛이 만든 산의 그림자를 프레임에 담으며 안셀 아담스의 사진을 흉내 내보았습니다. 대가가 받았던 영감을 따라서 찍어보는 것은 짜릿한 일이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 제 사진을 확인해보았습니다. 오십여 년 전에 찍었던 사진보다 제 사진이 훨씬 틔미해 보이는 것에 안셀 아담스가 더욱 존경스럽게 느껴지면서도 제 사진도 나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했기에 정상에 올라갔을 때는 이미 산 뒤로 해가 넘어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쉬운 데로 '레' 도시 전체 야경을 찍기는 했지만 막상 정상의 모습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사진을 이미 한 장 얻었기에 더 욕심 낼 필요가 없었습니다.


정상보다 정상을 향해 가는 계단이 더 가치로울 수 있다는 것을 배운 '레'의 마지막 석양이었습니다.



◀Moon and Half Dome, Yosemite National Park, California. 1960(왼쪽: 안셀 아담스)

▶Moon and leh, India Leh, Lakakh. 2016(오른쪽: 윤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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