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마르 곳곳에서 울리는 역사와 문화의 메아리

독일 바이마르(Weimar) 궁전과 음대, 그리고 쉼터

by 나흐클랑

바이마르 마크트플라츠(Marktplatz)에서 동쪽으로 조금 걸어나가다보면 시야에 검은 탑이 하나 들어옵니다. 한 때 멋진 청동빛을 내보였을 탑은, 바랜 색 만큼이나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서서 버티고 있었겠지요. 탑에 시선을 둔 채 조금씩 가깝게 다가가다보면, 탑 아래에 예스러운 바스티유(Bastille)도 하나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어요.


마크트플라츠 근처를 걷다 보면 검은 시계탑과 바스티유가 눈에 들어온다.

'바스티유'는 프랑스어로 작은 요새, 또는 보루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에 벌어진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을 들어본 적 있을 거예요. 그래서 마치 바로 '그 바스티유'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많은데, 사실 꼭 그렇진 않답니다. 이렇게 성의 입구에 만들어진 보루도 '바스티유'라고 부르니까요.


2025년 말까지 보수 공사 예정인 슈타트슐로스(Stadtschloss).

바스티유를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면 멋진 궁전이 하나 나옵니다. 슈타트슐로스(Stadtschloss), 직역하자면 '시(市)궁전' 정도가 되겠네요. 아쉽게도 잠정적으로 2025년 말까지는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지만요.


이 자리에 성이 있었던 건 중세시대 부터라고 해요. 그러나 1774년에 큰 화재가 발생해 탑과 바스티유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다 타버렸고, 1789년에 재건을 위한 궁정 건설위원회가 조직됩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바이마르에 도착하자마자 만났던 괴테, 바로 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이 궁정 건설위원회에 참여했다는 거죠. 글만 잘 쓰는 분인 줄 알았는데, 은근히 행정가의 면모도 드러냈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군요.

괴테 시절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건된 궁전. 이후에도 몇 번의 확장 공사를 거쳤다.

궁전은 괴테 시기에 4동짜리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건됐습니다. 이후에도 몇 번 확장 공사를 진행하긴 했지만, 큰 틀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셈입니다. 긴 시간의 누적을 오롯이 담고있는 장소에 방문하는 건 언제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이죠.


외관만 놓고 봤을 때는 그렇게 화려하진 않지만, 안은 또 어떨지 모르죠. 보수 공사가 끝나고 나면 내부도 구석구석 둘러봐야겠어요.


바스티유 밖으로 나가며 바라본 바깥 풍경.
바이마르 '프란츠 리스트' 음악대학(Hochschule für Musik Franz Liszt, Weimar).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돌아서서, 바스티유를 다시 나서면 맞은편 저 멀리에 궁전만큼이나 큰 건물이 하나 있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됩니다. 바로 바이마르 음악대학입니다. 바이마르 음대의 정식 명칭은 'Hochschule für Musik FRANZ LISZT Weimar'인데요. 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가 바로 이 학교를 설립했기 때문입니다.


리스트는 폭발적이고 남성적인, 흔히들 말하는 '비르투오소적인' 연주로 명성을 떨치던 순회연주자였어요. 그랬던 그가 처음으로 정착생활을 시작한 곳이 바로 바이마르입니다. 1848년부터 바이마르의 궁정악장(Kapellmeister, 카펠마이스터)으로 일하기 시작한 리스트는 1861년까지 바이마르에 머물며 그야말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죠. 초절기교 연습곡, 피아노 소나타, 협주곡 등 유명한 작품들을 작곡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한 것도 이 시기였으니까요.


바이마르 음대는 리스트가 1872년 설립한 고등음악학교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여러 번의 합병을 거쳐 오늘날의 음악대학 형태로 정착됐고, 동독 시절에도, 재통일 이후에도 그 명성을 이어왔죠. 도시 자체부터 벌써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곳이다보니, 음대의 위상도 그에 걸맞게 높은 편이에요. 입시에서 1차 통과하기도 어려운 학교로 꼽히기도 하고요.


음대 바로 옆에는 이렇게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잔디밭이 있다.

이처럼 전통있는 멋진 학교지만, 솔직히 바이마르를 둘러보는 여행자 입장에서는 크게 의미가 없잖아요? 안에 들어가서 구석구석 구경해볼 수도 없고, 설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크게 와닿는 게 많이 없을 수도 있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시선을 아주 살짝 옆으로 돌려보기로 합니다. 누구든 휴식을 즐길 수 있도록 공개된 잔디밭이 넓게 펼쳐져 있거든요.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을 열심히 탐험하던 여행자에게 이런 탁 트인 공간은 보기만 해도 편안함을 주죠. 게다가 원한다면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잠깐 쉬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요. 실제로 방금 전에 대학에서 뛰쳐나온 것만 같은 20대 남녀들이 잔디밭 곳곳에서 자리를 깔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바이마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 '별다리(Sternbrücke)'.

사실 이 잔디밭은 바이마르 시민들의 휴식을 책임지는 '일름 강 공원(Park an der Ilm)'의 끄트머리라고 볼 수 있어요. 잔디밭에 도착해서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본격적으로 공원에 진입할 수 있는 '별다리(Sternbrücke)'도 발견할 수 있답니다. 이 다리부터가 바이마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라고 해요. 그 시작이 무려 1651년에서 1654년 사이라고 하니, 상당히 오랜 역사를 버텨 온 다리네요.


일름 강은 튀링엔 주의 다양한 지역을 통과하는 강인데, 그 일부가 바이마르 시가지에 맞닿아있죠. 강을 따라서 넓은 공원이 조성돼있고요. 재밌는 건, 이 공원에도 괴테가 연관돼있다는 거예요. 18세기 후반, 아우구스트 공작이 괴테에게 정원과 오두막을 선물하면서 괴테가 이 공간을 디자인하기 시작했거든요. 아직도 이 일름 강 공원을 걷다 보면 'Goethes Gartenhaus', 즉, '괴테의 정원 오두막'을 찾아볼 수 있답니다.


마크트플라츠 근처에는 아주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으니 들러보자.

이쯤 되면 바이마르에서 걸은 걸음 수가 제법 될테니, 발바닥이 조금 아파올지도 모르겠어요. 끝으로 그럴 때 찾아가기 좋은 장소 두 곳을 소개해보려고요.


첫 번째는 'Giancarlo'라는 아이스크림 가게예요. 마크트플라츠에서 가깝고, '쉴러의 집' 바로 근처에 위치한 곳이라 찾기도 무척 쉽습니다. 독일에는 여름만 되면 'Eiscafe'라고 해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데, 바이마르에서는 여기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앉아있더라고요. 한 스쿱 당 가격은 다른 가게들보다 좀 비싼 편이지만, 다른 가게에는 없는 다양한 맛의 선택지가 준비돼있어서 가볼 만 하답니다. 비싼 만큼 한 덩어리의 크기도 제법 크게 담아주고요. 제일 중요한 맛은, 호불호 없이 누구나 맛있다고 할 만한 정도의 수준이에요.


맛있는 커피와 케잌을 파는 카페도 놓칠 수 없다.

두 번째로는 'Aviv Koriat Kuchenmanufaktur'를 추천해요. 이곳은 시가지에서 살짝 벗어나 있긴 하지만,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 안에 있어요. 여차하면 버스를 이용해도 되고요. '케이크 공장(Kuchen+manufaktur)'이라는 가게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곳은 맛있는 수제 케이크를 파는 곳입니다. 할머니로부터 전수받은 레시피를 비롯해, 이 집만의 독특한 레시피로 구워낸 케이크들을 맛볼 수 있어요. '독일식' 케이크 맛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추천합니다. 정말 맛있어요.


단, 내부 공간은 그렇게 넓지 않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물론 날씨가 좋을 땐 밖에 준비된 야외 테이블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너무 도로 바로 옆이라는 인상도 지울 수 없어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바이마르 탐방은 다시 돌아온다!

이렇게 바이마르를 한 바퀴 훌쩍 둘러봤습니다. 독일, 혹은 유럽 여행 오시는 분들에게는 바이마르 정도가 '소도시'로 꼽히는 것 같은데, 사실 바이마르 정도면 꽤 중형 도시라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세 편의 시리즈에도 아직 못 담은 장소들이 정말 많을 정도로요. 하지만 독일은 넓고, 바이마르 말고도 다양한 풍경과 소리가 넘쳐나니까요, 우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또 옮겨보는 게 좋겠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바이마르를 또 소개해보도록 할게요.


그럼, 새로운 시리즈로 만날 때까지, Tschüss!(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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