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피아노
새 집으로 이사 올 때 친정에서 가져온 피아노는 1990년도에 구입했다. 엄마와 피아노를 사러 가던 날이 생각난다. 아파트 상가 앞에서 사장님의 차를 타고 꽤 오랫동안 달려 도착한 곳 은 피아노가 아주 많은 곳이었다. 한여름의 더위가 시작되는 날. 엄마의 투피스가 땀에 젖어 손부채로 바람을 날리던 모습, 양갈래로 머리를 땋고 원피스 자락을 날리며 피아노 상점으로 뛰어들어가는 내 모습이 생각난다
피아노 학원에서 보던 낡고 조율이 안된 피아노와 다르게, 그곳은 광택이 나고 검은색 흰색 갈색 같이 다양한 피아노가 도서관의 서고처럼 줄 맞춰 서 있었다. 엄마와 사장님의 거래는 오래 계속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길고 지루한 거래였다. 엄마는 그곳에서 제일 좋고 값나가는 피아노를 골랐다. 그랜드 피아노 바로 아래 단계, 업라이트 피아노 중에서는 최고 사양이었다. 피아노를 배운 지 1-2년이 지나도 특출한 성장을 보이지 못하는 내 실력은 집에 피아노가 없어서라고 생각한 듯했다. 피아노를 치기 지겨워하면 "나중에 네가 스트레스받을 때 피아노를 치면서 풀면 얼마나 좋겠니"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피아노로 스트레스를 풀지 못했다. 좁은 방 두 칸이 딸린 집에 다섯 식구가 사는 곳에 있는 피아노는 늘 내게 짐이었다. 집이 좁아서 투덜대는 오빠들의 마지막 화살은 저 비싸고 무겁고 자리 차지하는 피아노와 그걸 치지 않는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줬던 엄마에게 향했다. 집에 피아노가 있어도 내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피아노를 치면서 멋지게 스트레스를 풀기를 바랐던 엄마의 바람은 어긋났다. 피아노 서고 가운데 놓인 소파에서 가격 흥정을 하던 지친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딸에게는 다른 인생을 바랐으리라.
-피아노를 치는 우아한 삶,
시골중학교에서 유일하게 도시의 명문여고로 진학했던 엄마가, 더 이상의 명문의 삶을 이어가지 못한 채 가져야 했던 가난을 딸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다녔던 명문여고에서 부잣집 딸들이 누렸던 삶을 지켜봤던 엄마는 본인이 누리지는 못했으나 본 값을 딸에게는 물려주고 싶어 하셨다. 체르니 30번이 지겨워서 피아노를 그만두면서 가끔씩 치던 피아노도 더 이상 치지 않았다. 가끔씩 입을 열어 소리를 들려주던, 장미 넝쿨이 양각된 콧대 높은 피아노는 그 뒤로 조용히 입 다물고 집안 구석에서 애물단지로 서있었다. 가족들이 피아노를 팔라고 집요하게 요구해도 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언젠가 막내가 피아노를 칠 거야, 쟤 시집가서 아이를 낳으면 배우지 않겠니 라며, 그렇게 20년을 버텨 주셨다. 그리고 엄마와 가족들의 각자 다른 바람으로 피아노는 우리 집으로 옮겨왔다. 엄마는 나와 손주가 치길 바라면서, 다른 가족들은 큰 애물단지를 치우기를 바라면서. 우리 집에 온 후에도 몇 년을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피아노는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됐다. 이제야 빈티지의 진가를 알아본 나와, 피아노를 시작하는 아이 덕분에.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오래전 피아노를 사주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피아노 할부금을... 3년은 갚았을 것이다. 매달 가계비에 피아노 할부금이 써져 있는 걸 봤다. 엄마의 고단한 노력과 인내심으로 여기까지 왔다. 나는 아이와 다시 피아노를 배울 것이다. 너무 늦질 않길 바란다. 엄마의 바람이 이제서라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음악으로 위로받는 삶을 살기 바랬던 엄마의 마음이 이제야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