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병원도 알아보기 시작했다.
타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세침검사 결과지, 조직검사 슬라이드, 초음파 CD 등 여러 가지를 챙겨야 한다.
내 암세포가 들어있는 슬라이드를 아주 소중하게 들고 집으로 왔다.
진단명 'C73, 갑상샘의 악성 신생물'
서류에 적힌 그 글자를 오래 바라봤다.
이제 내 몸 안에 있는 것이 단순한 '혹'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뉴스로만 보던 의료파업이 나의 현실로 들어와 그 속에서 헤엄치게 되었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나를 치료해 줄 의사를 찾는 게 문제였다.
'명의'리스트를 찾고 내가 다닐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건 쉽지 않았다.
해당 병원에 예약을 걸고, 가능한 날짜를 연락받는 일을 반복했다.
빅 5 병원의 경우 가장 빠른 날짜가 2027년이기도 했다.
처음엔 예약 가능날짜를 들을 때마다 경악했다.
아니 무슨 병원을 이리도 가기 어렵단 말인가..
세침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도 지루하고 힘들었는데
이번엔 끝이 보이지 않는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았다.
잡힐 듯 말 듯, 하지만 늘 한 걸음 느린 기분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후기를 찾아 읽고,
환우 카페에도 가입해서 정보를 얻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며 울기도 했다.
'나도 이러면 어떡하지'
끝없는 걱정의 파도 속을 허우적 되는 날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 더 어려웠던 건
주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는 일이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
그중에는 난 아빠가 가장 걱정되었다.
우리 아빠는 참 여린 사람이다.
겉으로는 강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그 속은 참 여리다.
딸이 암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 아빠를 보기가 어려워졌다.
아빠는 나를 직접 마주하기가 너무 어려웠었다보다.
한참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지내다가
부산의 병원에 가게 되었을 때 오랜만에 아빠를 보았다.
그때의 아빠는 나보다 더 수척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아.. 참 불효다..'
너무 속상했다.
나는 아빠에게 어떤 존재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사이가 좋은 부녀가 아니었다.
나는 아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너무 아팠었다.
그런데 지금은 괜찮다.
사람이 큰 일을 겪으면 철이 든다는데
나는 이때 들었는가 보다
아빠를 보는 순간 꼭 안았다.
어린아이가 된 것 마냥 엄마아빠의 손을 꼭 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부산 갑성산 명의로 알려진 선생님은
매우 바빠 보였고, 막힘없는 답을 주셨다.
내가 만난 두 번째 의사였다.
그런데 첫 번째 의사와 의견이 달랐다.
수술 방법도, 절제 범위도..
그래서 나는 한 명의 명의를 더 만나보기로 했다.
확신이 필요했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했다.